면역력이 낮은 아이를 둔 학부모라면, 학교에서의 출결 관리는 항상 마음에 걸려 있는 문제다. 이 글쓴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이가 자주 조퇴하고 결석해야 한 것으로 전해진다. 건강 상태가 그럴 수밖에 없었기에, 부모로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학교에 계속 알리고 서류를 챙기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가 계속 마음을 불편하게 한 것으로 전해진다. 교사가 그 조퇴와 결석에 대해 자꾸 재확인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두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반복적으로. 학부모는 불쾌한 것으로 전해진다. 내 아이의 건강을 의심받는 건가, 아니면 내가 부모로서 뭔가 부실한 건가 하는 불안감까지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자신을 의심한 것으로 전해진다. 혹시 내가 너무 예민한 건 아닐까. 선생님도 많은 학생들을 관리하셔야 하니까, 출결을 재차 확인하는 게 당연한 업무 절차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불쾌함을 드러내는 건 넘는 건가. 이런 내적 갈등이 쌓이면서 글쓴이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민원을 제기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단지 자신의 감정이 정당한 건지, 아니면 자신이 과하게 예민한 건 아닌지를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댓글들이 달렸다. 누군가는 공감해주기도 했고, 누군가는 다른 관점을 제시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 끝에 글쓴이가 내린 최종 판단은 타협과 포기였다.

여기서 핵심이 드러난다. 글쓴이가 원래 원했던 것은 뭐였을까. 교사가 재확인을 아예 하지 않는 것? 아니면 최소한 "우리는 학생들의 출결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때문에 출석 변동이 있을 때 한번 더 확인하고 있습니다"라는 한 마디의 설명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절차 자체를 바꾸기보다는, 그 절차의 이유를 알고 싶었던 거다.

하지만 그런 설명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글쓴이는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기로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자책이 따라왔다. 면역력이 낮은 아이는 결국 부모 탓이고, 더 열심히 키워야 하며, 조퇴와 결석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고. 마치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는 듯이. 결국 글쓴이는 자신이 올린 글을 지우기로 결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학교 현장에서 반복되는 이 같은 모습을 보면, 소통의 부재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다. 부모들은 분명 불편함을 느낀다. 하지만 그것을 표현할 권리가 있다는 생각을 갖지 못한다. 대신 스스로를 의심하고, 자책하고, 결국 침묵한다.

이것이 학교와 부모 사이의 신뢰 격차가 줄어들지 않는 이유인 것 같다. 절차의 이유를 한 줄이라도 설명해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많은 오해와 불안감이 사라질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 한 줄의 설명조차 전해지지 않을 때가 많다.


📌 원문 발췌

제가 넘 예민한가 궁금했고 불쾌하다 말씀드려도 되나 여쭤본거예요. 면역력 낮은 아이 부모탓 맞아요. 글은 지울게요.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