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가 한계에 다다르는 요즘 같은 날씨에서는 에어컨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지난 30분간의 짧은 외출이 그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햇빛 아래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온몸이 화로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피부에 와닿는 열기의 강도, 숨이 턱에 차는 답답함, 그리고 몇 걸음 걷는 것만으로도 온 힘이 빠진다. 그 짧은 시간 속에서 '정말 이게 가능한가' 싶을 정도의 무서움을 느낀다. 그러다가 실내에 들어서는 순간, 어둡고 시원한 공간이 마치 다른 세계처럼 다가온다. 천국과 지옥을 몸으로 직접 경험한 것 같은 극명한 대비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이렇게 짧은 30분의 외출로도 극심한 고통을 느꼈다면, 일의 특성상 냉방이 없는 환경에서 종일 일해야 하는 사람들은 정말 어떻게 여름을 버텨낼까? 또는 주거 환경의 제약으로 에어컨을 설치하지 못한 가정의 사람들은 얼마나 더 힘들 것인가. 야외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근로자, 형편이 어려워 냉방 기구를 갖추지 못한 저소득층 가정, 그리고 고령의 노인 세대처럼 냉방에 접근하기 어려운 집단들의 여름은 단순한 '불편함'의 영역을 명확히 벗어난다. 이들에게 여름은 버티는 계절이 아니라 견뎌내야 하는 시련으로 읽힐 것 같다.

학창시절을 되돌아보면 그런 환경이 일상이었다. 교실에는 커다란 선풍기 하나가 있었고, 분부가 없는 몸으로 책상에 앉아 있던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 당시에는 그것이 여름의 표준이었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렇게 여름을 보냈다. 선풍기만으로도 충분했던 시대가 있었다는 것 자체가 시간의 변화를 보여주는 증거다. 하지만 지금 같은 기후 환경에서 그런 식으로 여름을 보낸다면, 단순한 불편을 넘어 생각하기 싫을 정도로 위험해 보인다. 세대를 거쳐 기온이 얼마나 오르고 폭염이 얼마나 심해졌는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다.

폭염이 예측 불가능하게 심화되는 추세 속에서 온열질환 환자는 매년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극단적인 사고까지 잇따르는 현실 속에서, 냉방 시설에 접근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건강과 생명을 가르는 조건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선택이 아닌 필수로 여겨지는 시대인 것처럼 보인다.

요즘 들어 냉방은 더 이상 사치나 편의재가 아니라 생존 인프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에어컨이나 선풍기 같은 냉방 수단에 접근할 수 없다면, 여름이란 계절을 안전하게 지낼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 아닌가 싶다. 30분 밖에 있는 것도 버거운데, 그것을 몇 시간, 며칠, 한 여름 내내 견뎌야 하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의 냉방 불평등은 단순한 소비 격차 문제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계층과 세대를 나누는 생존의 문제로 읽힐 여지가 충분하다.

같은 여름을 살고 있지만, 그 여름의 강도와 고통은 냉방 접근성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는 현실이 씁쓸하다. 에어컨이 있는 공간과 없는 공간의 온도 차이는 단순한 수치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보인다. 그 차이가 어떤 사람에게는 일상의 편의를 의미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생존의 조건이 되어버렸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제 우리 사회는 냉방 접근성에 따라 완전히 다른 여름을 살아가는 두 개의 세계로 나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원문 발췌

교회 딱 들어가니 여기가 천국이구나 싶었습니다. 근데 일 특성 상 이런 날씨에 에어컨이 없는 곳에 일하거나, 혹은 주거지에 사정 상 에어컨 설치가 안 되는 분이 있다면 진짜 어떻게 살아가나요.

원본 출처: 클리앙 모두의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