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돌아가셨어."
친구에게 들은 이 말은 충격이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그 일이 벌어진 지 2달이나 지난 뒤라는 사실이었다. 친구는 주변에 아무도 알리지 않았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부모의 상실 같은 큰 일을 밖으로 꺼내지 않고 혼자 감당해온 그 시간이 얼마나 길었을까. 화자는 그 순간 잠시 멈춰 있다가, 지금이라도 들었다는 것에 감사하며 친구의 말을 듣고 최대한 위로해주려 애썼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밥값을 계산할 때, 화자는 평소처럼 각자 몫을 나눴다. 더치페이를 했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그 순간은 지극히 평범해 보였다. 위로도 했으니, 있는 그대로 친구를 대했으니 충분하다고 느껴졌을 것 같다.
하지만 친구는 나중에 서운함을 꺼냈다. "그렇게 힘든 일을 겪었는데, 그 밥 정도는 사줄 수 있었던 거 아니냐"는 말이었다. 표면적으로는 밥값 문제처럼 들릴 수 있지만, 사실 친구가 원했던 건 다른 것이었다. 슬픔을 뒤늦게 꺼낸 친구의 입장에서는 '이제라도 누군가가 나의 고통을 인식해주고 특별히 배려해주는 제스처'를 기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화자의 입장에서는 어땠을까. 지금 당장 친구의 이야기를 들었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부고를 늦게 들었다고 해서 화자의 책임은 아니었다. 그 상황에서 충분히 친구를 대했다고 여겨졌을 가능성이 크다. 일반적인 친구 관계에서 돌아간 지 2달 뒤의 만남에서 밥을 사주는 것이 '당연한' 예의는 아니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위로의 내용이 아니라 타이밍과 형식이라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슬픔을 겪은 누군가를 만났을 때, 그 사람이 무엇을 바라는지는 종종 암묵적인 것으로 보인다. 친구는 2달을 혼자 감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긴 시간 동안 누구도 몰랐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이 사실을 알아준 이 순간이 특별해 보이길 바랐을 수도 있다. 밥값이라는 작은 제스처가 "너의 고통을 이제라도 인식한 것으로 전해진다"는 신호로 읽히길 원했을지도 모른다.
반면 화자는 말로 위로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말로만 전달된 위로와, 구체적인 행동으로 표현된 위로는 상대의 마음에 다르게 닿는다. 같은 친절이라도 '표현 형식'이 상대가 느끼는 온도를 결정한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 이후 화자도 고민에 빠졌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인간관계에서 '정답'이란 무엇인가. 친구의 서운함이 전부 정당한 것만은 아닐 수 있지만, 그렇다고 화자의 행동이 완전히 틀렸다고 보기도 어렵다. 다만 두 사람이 원했던 것이 살짝 달랐고, 그 작은 온도 차이가 뒤늦게 적금처럼 쌓여서 한순간에 터져 나온 것 아닐까. 누구 하나가 잘못한 게 아니라, 슬픔 속에서 상대방의 필요를 정확히 읽지 못한 '그 간격'이 문제였던 것 같다.
📌 원문 발췌
친구가 아버지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두달 뒤에 해줬고, 밥은 평소처럼 더치했는데 나중에 '그렇게 힘든 일을 겪었으면 그 정도는 사줄 수 있었던 거 아니냐'고 서운해했다.
원본 출처: 인스티즈 익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