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견이 되자마자 파양을 언급하는 남편과 이를 막으려는 아내. 그 사이에 터지는 갈등의 중심에는 '파양'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인식의 차이가 있다.
남편의 주장은 명확하다. 다른 집에 보내는 것은 파양이 아니라는 것으로 보인다. 표현을 순화하면 그저 '보내는 것'이지만, 동물의 입장에서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익숙한 가정을 떠나 낯선 환경으로 가는 경험 자체가 혼란과 스트레스를 만든다. 남편이 그것을 파양이라 부르지 않으려 해도, 동물이 받는 정서적 영향은 동일하다는 게 아내의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반려동물을 입양할 때, 많은 사람이 새끼 때의 매력에 빠진다. 작고 귀엽고, 그 애교에 취해 입양 결정을 한다. 그런데 성견이 되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크기도 커지고, 성격도 변하고, 외모도 달라진다. 이 변화는 견종과 개인차에 따라 다르지만, '성장'이라는 점에서는 누구나 예측할 수 있다. 어린 유아가 자라 몸도 커지고 울음도 커지는 것처럼, 반려견도 마찬가지다. 그 과정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책임감도 함께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흥미로운 점은 남편이 반려동물 경험이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어릴 때 요크셔테리어를 길렀고, 푸들과 시츠까지 함께 키웠다. 그렇다면 왜 지금의 성장 과정이 낯설고 거슬리는가. 남편의 설명은 '큰 개들을 키워본 적이 없어서'라는 것. 하지만 아내의 눈에는 이것이 변명처럼 느껴진다. 처음부터 큰 개를 몰랐다면, 더욱 신중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인 것으로 보인다.
더 복잡한 문제는 여기서 드러난다. 남편은 아내가 주장했으니 따라서 입양했다고 한다. 처음부터 자신은 별로 원하지 않았다는 말인 것으로 보인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입양 전에 그 의사를 명확히 표현했어야 한다. 둘 중 한 명이 적극적이고 한 명이 소극적인 상황에서 책임은 쌍방에게 있다. 특히 입양이라는 결정은 한 생명을 맞이하는 일이기에, 부부가 함께 같은 마음으로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내가 남편을 설득하려면 어떻게 할까. 몇 가지 접근이 있다. 첫째, 파양의 정의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표현이 어떻든 책임을 포기하는 행위는 파양이라는 것. 둘째, 입양 전 부부 간 합의가 불충분했다면, 지금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어야 한다. 특정 견종이 커지면 어떤 특성을 보이는지, 어떤 돌봄이 필요한지 함께 학습하는 과정이 도움된다. 셋째, 현재의 개가 어떤 매력을 가진 존재인지 남편에게 다시 알게 하는 노력도 의미가 있다. 새끼 때의 귀여움만이 사랑의 유일한 근거는 아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 문제는 반려견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부부가 '책임'을 어떻게 이해하고 약속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에 관한 문제로 보인다. 개가 작을 때는 좋고 클 때는 싫다는 선택적 책임은 반려동물 윤리에서 인정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이런 상황이 부부 간의 신뢰와 책임감을 다시 한번 되짚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는 반응이 나온다.
📌 원문 발췌
근데 커지고나니 너무 크고 안이쁘고 애교도 없고 싫다하네요. 다른집에 보내는건 파양이 아니라는 신랑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