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요네즈로 버무린 그 반찬의 정확한 정체는 무엇일까. 사라다라고 부르기도 했고, 집 어른마다 부르는 이름이 조금씩 다르기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도시락 밑바닥에서부터 돌잔치·결혼식 상 위까지, 한국 가정의 밥상에 건너뛸 수 없이 등장했던 그것으로 보인다. 시대를 막론하고, 집집마다 어김없이 준비되던 반찬이었다.

다만 그 구성이 참으로 자유로웠다. 정해진 레시피라는 게 거의 없었던 셈인 것으로 보인다. 같은 집에서도 그날 냉장고에 무엇이 있느냐에 따라 들어가는 것들이 달라졌다. 어떤 집은 과자를 넣기도 했고, 어떤 집은 콩을 넣기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렇게 자유로웠기 때문에 지금도 '우리 집 사라다'에 대한 추억은 사람마다 미묘하게 엇갈린다. 같은 이름의 반찬을 들었는데, 떠오르는 모습이 조금씩 다른 것으로 보인다.

색깔만 봐서는 제대로 된 재료를 구분하기 어려웠다. 주황빛 조각을 집었다가 감자였고, 빨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게 당근이었던 착각들 말인 것으로 보인다. 어린 입장에서는 마요네즈 코팅 때문에 각 재료의 경계가 불명확한 것으로 전해진다. 겉으로만 보고 집으면 자주 틀렸고, 먹기 전까지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식탁 위의 작은 미스터리였던 셈인 것으로 보인다.

호불호가 확실하게 갈렸던 재료들도 있었다. 오이를 싫어하는 아이들이 눈에 띄는 오이 조각들을 하나씩 골라내던 일이 반복되면, 어느 시점부터 엄마는 처음부터 오이를 빼버리기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가끔 깜빡해서 들어가기도 했는데, 그럴 땐 뭔가 하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이 밥상에 흘렀다. "왜 또 들어갔어?"라는 한숨 말인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밥상 위에서 벌어지던 작은 협상과 타협들이 각 가정의 사라다를 천천히 다듬어 갔던 것 같다.

더 흥미로운 건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재료들이 추가되기 시작했다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건포도는 호불호가 명확한 것으로 전해진다. 건포도가 들어가는 집과 빠지는 집이 명확하게 나뉘었고, 가족 내에서도 의견이 상충하곤 한 것으로 전해진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 단 맛이 개성이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이물감이었던 셈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게맛살이 추가되는 집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그 노란 패킷이 사라다 위에 뿌려졌을 때의 그 기쁨이란, 어린 눈으로는 '고급스러운' 업그레이드처럼 느껴졌던 모양인 것으로 보인다. 평소의 반찬이 갑자기 특별해지는 경험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1990년대 중후반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세대별로 '게맛살의 등장'을 체험했느냐, 못했느냐로 사라다 추억이 나뉘기도 하는 것 같다.

작은 난관도 있었다. 메추리알은 젓가락으로 집기가 까다로웠다. 표면이 매끈해서 자꾸만 미끌어져 내려갔고, 결국 숟가락으로 떠야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런 사소한 '먹기 어려움'까지도 지금의 추억에는 남아 있다. 엄마가 숟가락을 건넸을 때의 그 순간까지 말인 것으로 보인다.

결국 그 반찬이 얼마나 특별했는지는 재료 목록의 화려함이 아니라, 그 '맛'에 모두가 어느 정도 수렴했다는 데 있을 수도 있다. 집마다 다르게 구성되었으면서도, 누군가의 식탁에서 마주했던 마요네즈의 그 향내와 여러 식감이 뒤섞인 그것. 그것이 세대를 가로질러 공유되는 '같은 추억'이 된 것으로 보인다. 지금, 누군가 사라다 얘기를 꺼내면 각자 자신의 '그 맛'을 떠올리게 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그 반찬을 기억하는 이유일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