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어머니는 게임에 대해 유독 엄격한 것으로 전해진다. ***에서 사범대를 다니다 일찍 결혼하면서 교사의 꿈을 접었던 어머니는, 그 아쉬움을 교육열로 자식들에게 쏟아부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백화점 복판에서 슈퍼페미콤을 사달라고 드러누웠지만, 어머니는 그냥 가버렸다. 그럴 줄 알았다. 게임은 집에서 하는 게 아니라는 신조였으니까.

그런데 반전이 찾아왔다.

초등학교 5학년쯤, 어머니의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러 일본에 다녀왔다. 그 집에서 또래 남자 아이가 플레이스테이션 1을 가지고 있었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백화점에 들어갔을 때는 더한 것으로 전해진다. 포켓몬스터 영문판이 대대적으로 홍보되고 있었다. 또 다른 아이들은 구매 의사를 보이고 있었다. 나는 그저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어머니가 닌텐도 게임보이 옐로우와 포켓몬스터 게임 팩을 사주신 것으로 보인다. 이해가 안 갔다. 기대하지도 않던 선물이었기에 받았을 때 펑펑 울었다.

그 이후로는 포켓몬스터에 완전히 빠져 151마리를 모두 모으는 걸 목표로 삼았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이 있다. 포켓몬스터의 설계가 단순한 오락만을 목표로 한 게 아니었다는 것. 151마리 중 20마리 이상은 혼자서는 얻을 수 없었던 것 같다. 뮤 같은 특별한 포켓몬은 특정 버전에서만 획득 가능했고, 통신 케이블을 통해 교환해야 진화하는 몬스터들도 많았다. 요즘의 온라인 게임을 생각해보면, 포켓몬스터는 당시로선 기발한 발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게임을 혼자 완성할 수 없게 설계해서, 아이들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도록 하는 것.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게 게임 설계의 핵심이었던 것 같다.

중학교에 올라가기 직전, 어머니는 나를 국제 홈스테이 프로그램에 지원시켰다. 미국 동부의 한 도시에서 한 달 반을 머물러야 한 것으로 전해진다. 영어도 못하던 나에겐 엄청난 도전이었다. "동양인인 내가 무시당하면 어떻게 하지?" "영어도 못하는데 친해질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한 가지 깨달았다. 어린 아이들이 가장 쉽게 친해지는 방법은 게임이라는 것. 그래서 닌텐도 게임보이와 함께 스타크래프트 CD, 디아블로 2 CD를 챙겼다.

첫 번째 문제는 도착 첫날부터 터졌다. 친절한 호스트 부부가 공항에서 마중을 나왔다. 큰 마당과 주택식 구조는 아파트에 익숙하던 나에게 신선한 것으로 전해진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피자를 사다 주셨다. 나는 부끄러운 실수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한국 아이들 사이에선 가운데 손가락으로 욕을 하는 게 유행이었다. 형이 먼저 먹으라고 했는데, 나는 가운데 손가락으로 응답한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에서는 극도로 무례한 행동이었다. 호스트 부부는 나를 따로 불러 차분하게 교육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순간부터 그 집 아이들은 나를 문제아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두 번째는 화장실에서 벌어졌다. 집 구조를 설명받고 처음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던 게임보이를 변기에 떨어뜨렸다. 황급하게 꺼내 씻고 말렸다. 다행히 고장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건 이후로 내 별명은 "토일렛 보이"가 되어버렸다. 토일렛 보이인 나는 형과 달리 그 집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왕따처럼 겉돌던 시간이 계속됐다.

그때 비장의 수를 꺼냈다. 게임이었다. 저택 지하실에는 컴퓨터가 6대 정도 있었다. 깔려 있는 게임이라곤 2D 골프 게임뿐. 나는 스타크래프트를 설치한 것으로 전해진다. 시연을 보인 순간 그 집의 모든 아이들은 "어메이징"을 외쳤다. 흥미롭게도 그들은 이 게임이 한국 것인지 물었다. 아니, 미국에서 만든 게임이라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게임으로 친해지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내가 가장 해보고 싶던 미니 트랙터를 모는 경험도 생겼다. 처음엔 왕따처럼 겉돌았지만, 게임으로 친구가 된 후에는 그들이 나도 트랙터를 몰게 해줬다.

게임은 언어가 없어도 통한 것으로 전해진다. 손가락 욕설 같은 문화적 오해가 있어도, 변기에 떨어진 게임보이 같은 우발적 사고가 있어도, 게임이라는 공통분모 앞에서는 모든 게 무너졌다. 그때 알았다. 아이들에게 게임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가장 원시적이고 강력한 도구였던 것 같다.


📌 원문 발췌

어머님이 닌텐도 게임보이 옐로우와 포켓몬스터 블루 게임 팩을 사주신 것입니다. 지체 없이 변기에서 닌텐도를 꺼내 씻기고 말렸는데 다행히 고장나진 않았습니다. 그래서 스타크래프트를 설치하고 시연을 보이니 그 집에 살던 아이들은 모두 '어메이징'을 외쳤습니다.

원본 출처: 클리앙 모두의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