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찹 탕수육이 원래 원가를 줄이기 위한 변형 메뉴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투명한 녹말 소스 대신 케찹을 사용하는 것이 훨씬 저렴했고, 덕분에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중국집들은 이를 거의 필수적인 단가 절감 수단으로 택했다고 알려져 있다. 당시 개인 음식점들이 생존을 위해 얼마나 창의적인 방법을 동원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인 셈인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케찹 탕수육은 자연스럽게 '싸구려 중국집의 대명사'로 낙인찍혔다. 누군가는 케찹 맛이 난다는 것 자체를 상품 품질 저하의 증거로 봤을 정도였다. 더 좋은 중국집에 가면 투명한 소스를 쓴다는 게 암묵적인 기준이 되었고, 그렇게 많은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흥미로운 변화가 나타났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한 사용자가 남긴 게시글에 따르면, 케찹 탕수육은 어느샌가 '근본'이자 '정통'으로 재평가받고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같은 시기 많은 중국집들이 더 정통적인 투명한 소스 탕수육을 만들려고 노력했고, 실제로 그런 시도들이 커뮤니티에 공유되기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오히려 케찹 탕수육을 옹호하는 목소리들이 커지고 있다고 한다. 마치 시장이 역주행하는 듯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인 것으로 보인다.
원래 음식의 '근본'이라고 여겨졌던 모습은 명확한 것으로 전해진다. 투명한 소스에 야채가 충분히 들어가는 스타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것이 정통적인 중국식 탕수육의 형태라고 광범위하게 인식됐고, 케찹을 사용한 탕수육은 그 반대편에 있는 존재로 취급받았다. 건강함도, 정성도, 정통성도 떨어지는 '변형'이었던 셈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정반대라는 게 흥미롭다. 케찹 탕수육이 원조(중국식)의 변형이 아니라, 한국의 경제적 현실 속에서 만들어진 '로컬 변형 요리'였다는 뜻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전환이 일어난 가장 큰 원인은 아마도 '익숙함의 힘'에 있을 것 같다. 케찹 탕수육을 자연스럽게 먹으며 자란 세대가 이제 성인이 되어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 그들의 어린 시절 기억은 케찹 탕수육의 달콤한 맛, 어머니가 가져온 배달 음식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이들이 주요 소비자층이 되면서, 그들의 경험이 '무엇이 맛있고 정통인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음식 평가에서 객관적 기준이 얼마나 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점인 것으로 보인다. 투명한 소스 탕수육도 분명 맛있고 정통일 수 있지만, 케찹 버전이 더 익숙하고, 더 친근하고, 결국 더 '정통'으로 느껴지는 것으로 보인다.
음식문화에서 '원조'를 정의하는 기준이란 생각보다 훨씬 유동적인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으로 어떻게 시작됐는가도 중요하지만, 현재 다수가 경험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가 종종 훨씬 더 강력한 영향력을 미친다. 특히 익명 커뮤니티들에서는 이런 집단의 기억이 빠르게 합의되고 규범화되곤 한다. 한 번 '케찹 탕수육이 근본'이라는 목소리가 형성되면, 그것이 정설처럼 작동하기 시작한다. 반박의 목소리가 있어도 '옛날 생각을 해보면 케찹 탕수육이 맞다는 지적이다'는 주장이 더 강하게 어필되는 경향을 보인다.
결국 음식의 근본을 둘러싼 논쟁은 존재하지 않는 기준을 놓고 벌어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모든 세대는 자신이 어릴 때 처음 접했고 자주 마주쳤던 음식의 모습을 그 음식의 '진정한' 형태라고 믿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케찹 탕수육이 처음에는 저렴함의 상징이자 질낮음의 증거였다면, 지금은 그 맛 자체가 정통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는 음식문화가 얼마나 유동적이고, 세대에 따라 얼마나 달리 해석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우리가 '정통'이라고 부르는 것들 상당수는 사실 특정 시점의 다수 경험이 굳어지고, 세월이 흐르면서 역사처럼 여겨지는 것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깨달음이 남는다.
📌 원문 발췌
원래 단가 줄이려고 케찹 넣은 싼마이 탕수육의 상징이었는데 어느샌가 근본으로 바뀜. 원래는 투명한 소스에 야채가 듬뿍 들어가야 근본 그 자체인데.
원본 출처: 루리웹 베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