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 야구부의 5·18 관련 사건 이후 학교 앞에 화환들이 늘어섰다고 전해진다. 근조화환과 응원화환이 일렬로 늘어서는 모습에 대해 한 가수가 최근 인스타그램에서 비판을 제기한 것으로 전해진다.
"꽃은 누군가를 때리는 데 쓰는 게 아니다." 이 발언의 배경에는 근조화환이 정치적 공격 도구로 변모한 현상이 있다. 죽음을 애도하는 상징으로 쓰이던 화환이 생존 인물을 조롱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인 것으로 보인다.
가수 발언에 따르면 화환 리본의 문구들은 "오프라인 댓글"처럼 기능한다고 본다. 길가에 노출된 채로 누구나 볼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익명 댓글보다 훨씬 강렬한 시각적 압박을 미친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주목할 점은 화환 정치화가 단발성 사건이 아니라, 최근 수년간 반복되어온 패턴이라는 것으로 보인다. 5·18 관련 논란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이슈마다 누군가는 근조화환을 정치적 압박 수단으로 보내왔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배***고처럼 미성년자가 생활하는 교육 공간이 그 대상이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학교 앞 화환을 매일 마주하는 것은 학생들인 것으로 보인다. 논란의 당사자도 아닌 아이들이 등교할 때마다 혐오의 시각적 상징을 통과해야 한다. 가수는 "누가 아이들의 학교 앞까지 근조화환을 보내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혐오의 상흔 속을 걸어 교실로 들어가는 학생들의 심리 상태는 어떨까. 표현대로라면 "두렵고 싫고 밉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는 반응이다.
응원화환도 동일한 문제를 안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적 이슈에 동조하려는 취지의 응원화환 역시 화환을 "누군가를 때리는 무기"로 변질시키는 현상이라는 평가다.
관행은 반복되면 문화가 된다. "근조"라는 엄숙한 단어가 조롱의 의미로 타락한 것도 이 과정의 산물로 보인다. 죽음을 기리는 순수한 마음이 벗겨지고 정치적 적대감이 그 자리를 차지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를 "사회의 감정이 메말라가는 증거"로 읽는 시각이 있다. 일상 속 화환이 상호 혐오의 기호로만 기능하게 되면서, 우리가 얼마나 자주 미워하는 문화에 익숙해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현상이라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아이들이 "세상은 원래 미워하는 곳"이라고 무의식 속에서 배우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도 제기되고 있다. 혐오가 일상화되고 그것이 학교로까지 침투할 때, 미성년자들에게 미칠 영향은 가늠하기 어렵다.
"타인을 해치기 위해 무기화된 꽃은 더 이상 꽃이 아니"라는 지적은 화환 정치화의 연쇄를 멈추고 "최소한의 품격을 회복"하자는 촉구로 들린다. 혐오의 관행이 굳어지는 와중에도 아름다운 것을 그대로 지켜내는 문화적 선택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 원문 발췌
길가에 늘어선 화환들에서는 꽃이 주는 기쁨이나 생명력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저 고약한 습성이 만들어낸 '꽃 낭비'일 뿐
원본 출처: 더쿠 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