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의 그 말 한마디가 가장의 세상을 흔들어놓았다. 집주인의 입에서 나온 '전세 만기'와 '억 단위 보증금 인상 요구'. 40대 중반, 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입장에서 들을 만한 소식은 아니었다. 당장 구할 길이 없는 큰돈의 압박. 그리고 그 돈을 못 내면 외곽으로 밀려나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막연한 불안감까지 덤이었다. 담배 연기만 피우고 있는 밤이 계속되는 중이었다.
이렇게 된 상황을 되짚어보면, 2020년 말의 그 선택지가 떠오른다. 당시 ***지역의 20평대 아파트가 11억 중반에 거래되고 있었다. 영업 끝에 목돈을 긁어모으면 충분히 매매를 통해 집을 갖출 수 있던 시점이었다. 하지만 그때 온갖 미디어를 통해 퍼지던 공포와 함께, 투기꾼들의 과열된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던 이 가장은 다른 판단을 내렸다. '이건 폭탄을 돌리는 막차다. 탐욕에 함께하지 말자.' 그렇게 6억 초반대의 전세 보증금으로 선택지를 바꿨다. 당시엔 그것이 상식적이고 정의로운 결정이라고 믿었다. 버블이 영원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자신의 선택이 역사적으로 옳을 거라는 확신까지 가졌었다.
그로부터 몇 년. 정부의 정책 기조가 바뀌었다. 주택 공급 제약을 풀고, 여러 규제를 완화하면서 집값을 떠받치는 움직임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는 극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11억을 호가하던 그 아파트는 이제 17억 원대의 가격을 기록하고 있었다. 6년이라는 기간 동안 6억 원이 넘는 상승. 만약 영끌의 길을 택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생각이 자꾸만 맴돈다.
가장의 마음은 복잡한 것으로 전해진다.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 것으로 전해진다. 거품을 거절한 것 자체는 합리적인 판단이었다고 본다. 그런데도 그 '합리적 선택'이 현실에서는 불이익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전세는 월세처럼 지속적인 납부 부담은 없지만, 집값이 오를 때마다 보증금 인상 압박은 세입자를 가장 먼저 옥죄는 구조였다. 영끌을 회피한 선택이 오히려 '미련한 선택'으로 평가받는 순간이 찾아온 것으로 보인다. 상식적으로 행동했다고 생각한 자신이 손해 보는 구조 속에서, 탐욕에 물든 사람들만 웃음을 짓는 세상이 이해가 안 간다는 생각만 자꾸만 든다.
아내와 아이들 앞에서의 그의 모습은 초라한 것으로 전해진다. 열심히 일해온 노동의 가치가 투기 자본 앞에서는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차라리 대출을 끼고 거품 위에 올라탔던 사람들이 '자산이 늘었다'며 자랑스러워하고 있는 모습도 자존심을 건드렸다. 그들은 대출금의 이자를 헐떡이면서도 수익을 챙긴 셈이고, 자신은 꼬박 번 봉급을 절약하면서도 집의 문턱에 조차 못 들어선 꼴이었다. 자신이 '상식적 선택'을 한 대가는, 가족 앞에서 느끼는 박탈감과 자괴감이었다.
그럼에도 믿음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이 거품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 언젠가는 상식적인 시장으로 돌아올 거라는 막연한 희망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당장 또 이사짐을 챙겨야 하는 현실 앞에서, 그 희망도 아득해 보였다. 소주 한 잔이 더 없이 간절한 밤들이 계속될 것만 같은, 그런 심정이었다.
📌 원문 발췌
퇴근길에 집주인한테 전세 만기 통보를 받았는데 보증금을 억 단위로 올려달라고 하네요. 2020년 말에 *** 20평대 11억 중반 하던 거, 영끌하면 잡을 수 있었습니다. 탐욕에 동조하기 싫어서 6억 초반에 전세 들어갔고, 정신 차려보니 그 아파트 지금 17억 원 바라
원본 출처: 클리앙 모두의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