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온라인 커뮤니티 글쓴이가 제시한 분석이 있다. 어떤 방언에 대한 조롱이 십 년 이상 살아남는 현상을 보며, 이 조롱에 대한 반박이 자꾸 튕겨 나간다고 지적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이유는 조롱에 대한 반박 경로가 미리 막혀 있는 논리 구조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인 것으로 보인다.

특정 정치인과 그의 출신 지역 방언을 연결시킨 이 조롱 화법의 기원을 보면, 한 개인의 어투를 가지고 시작된 일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비판이 들어올 때마다 논점을 점진적으로 확대시키는 방식으로 대응해온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그의 관찰인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회피 장치: '지역마다 사투리가 다르다'

"사투리는 지역마다 쓰이는 방식이 다르지 않냐"는 주장인 것으로 보인다. 얼핏 타당해 보인다. 실제로 한 지역 내에서도 세부 지역마다 표현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논리는 논점 희석의 고전적 사례라는 것이 그의 지적인 것으로 보인다.

원래 비판의 대상은 특정 정치인이 사용한, 특정 지역의 특정한 어투였다. 그 지역의 방언 사용자들이 "우리는 그렇게 쓰지 않는다"고 반박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순간, 조롱하던 쪽에서 "그래도 경상도 어딘가에선 이렇게 쓴다"라며 범위를 확대해버린다. 이렇게 되면 논쟁은 "특정 지역의 어법"에서 "경상도 전체의 다양한 방언"으로 자동 전환되는 구조를 띠게 된다. 당사자들의 반박이 오히려 논점을 더 희석시키는 모순 구조가 만들어진다.

더 문제인 것은, 다른 지역의 화자들이 "아 맞아, 우리 지역에서는 그런 식으로 쓰기도 해"라고 무의식적으로 맞장구를 칠 때다. 선의의 발언이지만, 실은 원래의 비판 근거인 "특정 지역의 규범적 어법"을 스스로 약화시키는 데 작용한다는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회피 장치: '사투리는 정해진 것이 없다'

"누가 사투리의 문법을 정했냐, 정답이 있냐"는 식의 주장인 것으로 보인다. 이는 언어학의 기초 개념을 외면한 것으로 그는 지적한다.

언어에는 두 가지 층위가 있다. 어법(Usage) 은 실제 화자들이 의사소통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말의 방식이고, 문법(Grammar) 은 그 어법에서 나타나는 규칙성을 정리·분석한 것으로 보인다. 누군가가 위에서 아래로 정해주지 않아도, 같은 언어를 쓰는 화자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규칙이 형성된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어제 있었던 일을 얘기하는데 시제 표현을 계속 틀리면 상대방은 혼란스러워한다. "사투리는 정해진 것이 없다"는 주장은, 언어의 본질인 의사소통의 일관성을 무시하는 것이라는 지적인 것으로 보인다.

선의의 동조자들이 갇히는 구조

방언 연구자나 해당 지역의 오래된 화자라면, 그 언어의 규칙성을 관찰하고 설명할 입장이 있다. 하지만 온라인 논쟁에서는 이런 당사자성과 자격이 무시되는 경향을 보인다. 대신 "정해진 것이 없으니까 누구나 의견을 낼 수 있다"는 식의 평평한 구조가 만들어지고, 결과적으로 반박이 더 어려워진다는 분석인 것으로 보인다.

역설적 현실: 조롱이 방언을 바꾼다

더욱 안타까운 부분이 있다고 그는 언급한다. 인터넷의 전파력이 워낙 크다 보니, 이 조롱 화법 자체가 실제 방언 사용에 역으로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인터넷 세대에게 노출된 어린 세대들이, 조롱의 대상이 된 방언 표현을 의도적으로 피하거나 변형시킬 수도 있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원래 있던 방언의 어법이 정치적 조롱의 대상이 되면서, 자연스러운 언어 발달 과정이 왜곡됐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 원문 발췌

애초에 그들의 도구화가 되었던 대상은 *** 대통령께서 사용하셨던 특정 지역의 사투리였습니다. 언어는 규칙성, 사회성을 가진다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원본 출처: 클리앙 모두의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