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말 한국에서 유행했던 조기유학 붐. 어학연수라는 이름으로 떠난 중학교 3학년 ***는 밴쿠버에서 예상과 전혀 다른 현실과 맞닥뜨렸다. 보내준 이로부터의 제대로 된 보살핌이 없었다. 기본적인 생활비마저 부족했던 그곳에서 ***는 영어도 서툴고, 필요한 것들을 사 줄 형편도 되지 않았다. 오롯이 혼자라는 감각이 얼마나 절절했을까.

밴쿠버의 한 교회에서 ***와 ***는 처음 만났다. 낯선 곳에서 말도 어색하고 불안해하는 소녀 앞에 먼저 손을 내민 것은 ***였다. 말이 많지 않으면서도 따뜻한 그 친구는,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의 외로움을 조금씩 누르는 법을 알고 있었다. 집에 초대받아 하룻밤을 묵으며 ***의 어머니가 직접 만든 아몬드쿠키를 나눠 먹었다. 그렇게 사소한 순간들이 ***에게는 생명줄이었다.

***와 함께 지낸 시간들은 사진처럼 선명하다. 바다가 있는 공원에서 나눠 먹은 아이스크림, 그곳의 맑은 햇빛, 그리고 옆에 있던 친구의 얼굴. 영화관에 가서 본 로봇이 나오는 어느 영화. 화면 속 슬픈 장면에 ***는 울었고, ***도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영어 자막을 다 이해하지 못했어도, 친구의 눈물을 함께 느끼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것이 감정 공유의 진짜 의미인 것을 그때는 몰랐다. 하지만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그 영화관의 공기, 그 순간의 감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둘의 연락은 이어졌다. 이메일을 통해 주고받은 말들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로그인 비밀번호 하나가 두 사람의 모든 것을 끊었다. 계정이 막혔을 때 ***는 ***를 다시 찾을 방법을 알 수 없었다. 인터넷 초창기의 단절은 그렇게 절대적이었다. 26년. ***는 한 번도 ***를 잊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추억은 선명한데, 재회의 경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 친구에게 전하고 싶은 말들이 있다. 만약 이 글이 눈에 띈다면, 그건 운명이라고 ***는 믿는다. 당신이 없이 26년이 흘렀다는 것이 미안하다. 연락이 끊긴 것이 당신을 피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방법이 없었고, 길을 잃었을 뿐인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당신의 모습이, 당신과 함께한 날들이 선명하다고 ***는 말한다. 당신이 자신을 잊었을 수도 있다고 해도 괜찮다고. 그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가능하다면, 언젠가 다시 만나고 싶다고.

1990년대 말 한국의 조기유학 열풍은 종종 준비 없는 부모들과 방치에 가까운 환경 속에서 아이들을 내던졌다고 지적된다. ***의 경우도 그랬다. 하지만 그 시간 속에서 낯선 또래 한 명의 작은 친절이 그를 지탱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메일 비밀번호 하나가 26년의 공백을 만들었다는 것은, 인터넷 초창기에 연락 수단이 단절되면 관계도 영원히 끊기던 시대의 한 단면인 것으로 보인다. 지금이라면 SNS와 검색 엔진으로 찾아낼 수 있을 그 친구를. 하지만 ***는 여전히 찾고 있다. 누군가의 진심 어린 친절이 수십 년 뒤에도 누군가를 움직이게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듯.


📌 원문 발췌

그 친구 이름은 ***이고, 영어 이름은 ***였어요.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우리는 한동안 메일을 주고받았습니다. 그때 메일주소 비번을 잊으며 연락이 끊겼어요.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