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는 형이나 언니, 또는 오빠와 깍까리면서 자주 싸웠다. 사소한 일부터 시작된 싸움이 하루를 꼬아 먹곤 했고, 그렇게 투닥대는 것이 형제 관계의 일상이었다. TV 리모컨을 두고 싸우기도 했고, 엄마 밥상 앞에서 누가 더 많이 먹느냐로 싸우기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 생각해보니 하찮은 이유들이지만, 그때는 그것이 세상의 전부인 양 화났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어른이 되어버린 지금, 그 형제들이 가장 소중한 사람으로 남아 있다. 이것은 단순히 성장통을 겪은 뒤의 화해라고 보기 어렵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부모님을 기억한다는 것의 무게를 생각해보자. 우리는 부모님을 어떤 방식으로, 어떤 감정 속에서 경험했는가. 어릴 때 밥을 먹던 시간, 외출할 때 챙겨받던 것들, 혼날 때의 공포감과 그 뒤의 포옹, 생일을 축하받던 순간들. 그 모든 기억 속에서 부모님은 '부모님'으로 존재한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기억을 정확히 같은 시공간에서, 같은 방식으로 경험한 사람이 누구냐는 것으로 보인다. 가장 친한 친구도, 먼 친척도, 신혼 후 만난 배우자도 그 기억을 온전히 공유하지 못한다. 같은 집에서, 같은 부모님 아래에서 자란 경험은 형제자매와만 공유할 수 있다. 이것이 형제자매가 특별한 이유다.
가족이 모이는 자리에서 누군가 어린 날 엄마의 요리에 대해 말한다. "엄마가 주말마다 끓였던 그 국 말이야." 그러면 형제자매는 그 정확한 맛을 알고 있고, 그 냄새까지 기억한다. 누군가 아빠의 말버릇을 흉내 낸다. 형제자매는 그것이 정확히 어떤 상황에서 나왔는지 안다. 이러한 '정확한 공통 기억'은 형제자매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자 책임인 것으로 보인다.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각자의 삶이 갈라진다. 학교도 다르고, 일하는 곳도 다르고, 친구 관계도 다르다. 의견도 달라지고, 가치관도 달라진다. 당연히 어릴 때 같은 방에서 자던 형제와 현재의 자신은 많이 달라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거부감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으로 다가온다. 왜냐하면 철이 들면서 어린 날의 사소한 싸움이 얼마나 하찮은 것이었는지, 그리고 '같은 시간을 함께 보낸 누군가'의 존재가 얼마나 큰 것인지 깨닫게 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누군가는 인생의 어떤 순간에 '나만 이해할 수 있는 일'을 경험한다. 부모님의 노화, 가족의 어려움, 집의 변화. 그 순간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누구인가. 흔히 그것은 형제자매다. 왜냐하면 그들은 단순한 관계가 아니라 '나와 같은 시대를 같은 집에서 살아낸 사람'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어른이 되니 형제자매의 존재가 묘한 안정감을 준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통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이는 부모님을 공유했다는 그 단순한 사실이 얼마나 깊은 관계를 만드는지 보여준다. 부모님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형제자매와 함께 그 기억을 지키고 나눌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위로가 된다.
나이가 들수록, 형제자매의 존재는 더욱 귀해진다. 일종의 과거로 가는 유일한 문, 함께 기억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 어릴 때 싸웠던 그 형제가, 나이 들어 가장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다는 것은 그렇게 당연하면서도 놀라운 일인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부모님을 부모님으로 기억하고 추억할 수 있는 존재가 사실상 혈육 뿐이잖아. 나랑 혈육도 자랄땐 엄청 많이 싸웠는데 커서는 각자 철도 들도 그래서 그런지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사이가 됐음
원본 출처: 더쿠 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