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익명 커뮤니티에서 벌어진 한 발언이 말 그대로 논쟁의 중심이 되었다. 지난날 명망 있던 한 인물이 '용역비평가'와 '촉법비평가'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이에 대해 "표현이 거칠지 않냐, 멸칭 아니냐"는 반응이 쏟아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 발언을 옹호하는 누리꾼들은 "이건 멸칭이 아니라 비유"라고 선을 긋는다.
멸칭과 비유의 경계는 어디인가. 한 누리꾼은 이 둘이 다르다고 본다. 모욕적인 표현이 반드시 멸칭은 아니라는 논리다. 왜냐하면 이 표현들이 감춰진 현실을 한눈에 드러내는 '비유'의 기능을 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인 것으로 보인다. 가린 것을 벗기는 표현의 강도가 높을 수 있지만, 그것이 바로 이 표현이 촉발하는 반응의 이유라는 해석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촉법비평가'라는 표현을 풀어보면 여기서의 주장이 명확해진다. 한 누리꾼 반응에 따르면 이는 근거 없이, 혹은 아주 작은 사실의 조각만을 입에 물고서 물량 공세에 동원되는 수준 미달의 평론가를 지칭한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즉, 단순한 욕이 아니라 그 행동 방식을 매우 정확히 포착하는 묘사라는 논리다. 모욕의 수위가 높을 수 있지만, 그것은 비유의 정확도와 맞닿아 있다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논쟁 구도 자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표현이 거친가 거슬리는가를 두고 싸우는 와중에 더 근본적인 질문은 뒤로 밀려난다는 지적이 있다. 정치 비평의 공정성이 쟁점이 될 때마다 비슷한 양상이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는 관찰인 것으로 보인다. 누군가는 비평가의 독립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누군가는 "그런 표현을 쓰면 안 된다"며 표현의 수위를 문제 삼는다. 결과적으로 진짜 쟁점이 가려진다.
원문 반응을 보면 실제 핵심은 다른 곳에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치인의 영역과 비평가의 영역은 분명히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들이 보이지 않게 뒤에서 손을 잡고 있다면, 그것도 스피커(영향력 있는 인물들)를 동원한다면 어떻게 되나. 정치인끼리만 편먹고 목소리를 키우는 것과는 질이 다르다는 지적인 것으로 보인다. 정치와 비평이 결탁해 대중을 설득하려 한다면 그것은 반민주적 구도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 논리를 쭉 따라가면 대칭성을 발견할 수 있다. 상대방이 쓰는 특정 표현 역시 "형식만 봤을 때는 멸칭처럼 보이지 않냐"는 질문도 가능하지 않은가. 결국 어떤 표현을 동원하든, 문제는 표현의 형식이 아니라 그것을 쓰는 의도의 비열함에 있다는 결론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표현이 거칠다"는 항의는 본질 회피는 아닐까.
그럼 이 논란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무엇인가. 커뮤니티의 반응에서 반복되는 지점이 있다. '용역의 발주자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인 것으로 보인다. 지지자들이 가장 우려스럽게 지켜보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라는 분석인 것으로 보인다. 왜 그렇게까지 나서지 않던 누군가가 이 시점에서 목소리를 낸 건지, 그 배경에는 어떤 구조가 숨어 있는지를 추적하려 하고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용역비평가, 촉법비평가는 모욕적인 평가이지만 멸칭이 아니며, 용역평론가라는 비유가 이끄는 자연스러운 의문은 그 용역의 발주자가 누구인가라는 것입니다.
원본 출처: 클리앙 모두의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