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극소형 주택 문제를 조명한 한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글이 충격을 주고 있다. 원래는 일반 주거 건축물로 설계됐던 구조를 층으로 분할해 새로운 임대 단위를 만드는 '관짝방(棺材房)'의 실태를 생생하게 보여주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곳에서는 인간다운 거주가 무엇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층 분할은 건물주의 의도적인 개조다. 원래 한층에 한 가구가 살 수 있는 공간을 중간에 칸막이로 나누면, 같은 층에서 두 개의 임대 공간이 생긴다. 임대 단위가 두 배로 증가한다는 것은 임대료 수익도 두 배가 된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건축물이 원래 가진 천장 높이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좀 더 많은 세입자를 우겨 넣기 위해 강제로 층을 쪼개고 벽을 세운 결과, 거주 공간은 극도로 좁아진다. 그 모양이 관처럼 보여서 붙은 이름이 '관짝방'인 것으로 보인다. 이는 주거의 질을 버리고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시장의 선택을 보여준다.

공간의 극한은 이렇게 표현된다. 한 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을 정도의 좁이에, 두 명이 함께 산다. 개인 공간은 없다. 밥통 같은 그 좁은 방에서 겹쳐서 생활해야 한다. 그 안에서 밥을 짓고, 자고, 옷을 갈아입고, 화장실을 쓴다. 두 명의 생활 루틴이 물리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공간인 것으로 보인다. 프라이버시는 없고, 스트레스만 쌓인다.

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창은 있지만 크기가 극히 제한적이고, 마주보는 다른 건물 때문에 햇빛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다. 습기가 쌓이고, 냄새가 피어난다. 그런 환경에서는 바퀴벌레도 번식한다. 한 누리꾼이 공유한 영상에서 보인 것처럼, 밥통처럼 보이는 공간 안에서 밥통 같은 크기의 물건 안에 갇혀 죽은 바퀴벌레도 발견된다는 건, 그 공간이 얼마나 오염되어 있는지를 말해준다. 곰팡이도 피고, 악취도 난다.

또 다른 극단적인 측면은 사망인 것으로 보인다. 위층에서 누군가 세상을 떠나도, 아래층의 세입자는 끝내 모를 수 있다. 창문을 닫아두면 그렇다. 극도로 좁은 공간, 제대로 된 환기도 불가능한 곳에서 시간이 지나고 부패가 진행되어 냄새가 진해질 때, 그제야 누군가 이상함을 감지한다. 그러면 경찰에 신고한다. 죽음의 발견 자체가 지연되는 것으로 보인다. 한 인간의 죽음이 냄새로만 감지되는 공간. 그것이 관짝방의 현실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다.

이런 공간의 월 임대료는 320달러라고 한다. 숫자만 보면 '싸다'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320달러라는 가격이 존재한다는 것은, 이 정도의 공간 외에는 선택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빈곤층에게는 주택 선택권이 없다. 부동산 시장에서 이보다 싼 곳은 찾을 수 없거나, 있어도 극도로 제한적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관짝방이 유일한 선택지가 된다. 월세액은 그 절박함을 반영하고 있으며, 착취 구조가 숫자로 드러난다는 시각도 있다.

흥미롭게도 감옥과의 비교가 나온다. 국가가 운영하는 감옥의 환경이 민간의 관짝방보다 훨씬 낫다는 평가다. 감옥에는 정해진 통풍 기준이 있고, 최소한의 위생 기준도 있다. 공간도 좀 더 크다. 죄수도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조건을 보장받는다. 그런데 일반 시민이 머무는 공간은 그렇지 않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법적·제도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빈곤층을 대상으로, 부동산은 극한의 착취를 자행한다. 그 역설이 관짝방에 응축되어 있다. 죄인의 공간보다 못한 민간 주택 — 이것이 현대 도시 빈곤의 실상을 보여주는 한 단면인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위층에 사람이 죽어도 창문을 닫으면 모른다,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그때 경찰에 신고한다

원본 출처: 더쿠 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