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억이 현재의 신뢰를 흔드는 순간이 있다. 한 익명 게시판 글쓴이가 공개한 경험이 바로 그것이었다.
스무 살 때 동아리 엠티에서 술을 마신 뒤 몸이 좋지 않았던 순간이 있었다. 당시 남선배와 여선배가 모두 나서서 그 상황을 정리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취한 상태에서의 취약한 순간, 그걸 도와준 선배들의 손길은 충분히 고마운 기억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 이야기를 애인과 함께 나눴을 때 터졌다.
애인이 먼저 물었다. "남자가 치워줬어?" 남선배뿐만 아니라 여선배도 함께였다고 설명했더니, 애인의 대답은 이랬다. "남자분은 포상이었겠네." 그 순간 글쓴이는 묘한 불편함을 느꼈다. 같은 도움인데 왜 불쾌했을까. 글쓴이는 이 감정을 "왜 이렇게 더럽지?"라고 표현했을 정도였다.
'포상'이라는 단어의 의미부터 들여다보자. 본래 이 말은 좋은 일을 한 사람에게 주는 보상을 뜻한다. 그런데 애인이 말한 '포상'은 달랐다. 남선배가 벌어진 상황을 처리해준 도움을 '포상'이라고 부르는 것—그것이 순수한 도움 행위를 완전히 다른 의미로 변환시켜 버린 셈이었다. 도움을 도움으로 보지 않고, 어떤 성적 맥락의 '얻음'으로 읽어낸 것으로 보인다.
왜 이것이 불쾌했을까. 발언의 깊이를 들여다보면 여러 층의 문제가 있었다.
글쓴이의 취약한 순간—술에 취한 상태, 생리적으로 도움이 필요했던 상황—을 오히려 성적으로 재해석하는 시선이 담겨 있다. 그 순간은 순수한 신체적 필요에 대한 도움이었을 뿐이었는데, 애인의 한마디로 그것이 다른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생겼다. 도움을 주었던 선배를 수혜자(포상을 받는 사람)로 두고, 도움을 받았던 글쓴이 자신을 마치 '객체'처럼 위치시키는 구도가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순수한 도움을 왜곡된 시선으로 변질시켜 읽어내는 방식이었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만약 이런 발언이 반복된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과거의 도움, 호의, 글쓴이가 취약했던 순간들을 성적으로 소비하려는 시선이 계속된다면, 그것은 단순한 질투심이나 농담의 차원을 넘어선다. 상대를 객체화하는 관점이 내재되어 있지 않은가 하는 의문을 품게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관계 속 신뢰의 기초는 얇다. 상대방이 나의 과거를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발언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나를 도움 받았던 그 상황을 성적으로 재해석하려는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그것은 현재 관계 속에서도 나를 어떻게 대하고 있을지에 대한 신호가 될 수 있다.
이 글의 댓글들을 보면 비슷한 경험들이 모여 있다. "그런 식의 발언을 할 때마다 신뢰가 깨진다"는 의견, "상대의 과거를 성적으로 읽으려는 습관이 무섭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글쓴이만의 경험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많은 사람이 겪는 불편함인 것 같다.
발언 한마디가 얼마나 큰 신뢰의 금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 원문 발췌
남선배 여선배 둘 다 치워줬다 하니까 남자분은 포상이었겠네~~ 이러는데 왜캐 더럽지...?
원본 출처: 인스티즈 익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