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디푸스 신화에서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하려는 욕망은 한 세대가 이전 세대의 권력을 걷어내려는 심리의 상징인 것으로 보인다. 한 누리꾼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 정치의 세대 갈등도 이런 프레임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세대마다 "아버지"라는 타깃이 바뀔 뿐, 그 욕망의 구조 자체는 반복된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사이클을 보자. 산업화 시대 기성 세대가 권위주의와 부정부패로 지배하던 한국 사회에서, 386세대와 X세대는 그들을 "아버지"로 인식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이 느낀 분노는 단순한 정치적 반발이 아니라 생존 자체에 대한 절박함이었다. 1980년대의 독재 체제, 비리로 얼룩진 권력 구조에서 벗어나려는 열망이 민주화 운동으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386이 권력의 중심으로 올라섰다. 지금의 2030 청년층이 정치에 눈을 떴을 때, 그들이 본 것은 386의 자부심이었다. "우리가 민주화를 이뤄냈다"는 자긍심으로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세력 말인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청년층 눈에 기성 세대 역시 같은 종류의 부정부패, 같은 종류의 '위선'을 반복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과거 386이 산업화 세대를 바라봤던 감정과 본질적으로 같은 분노가 치솟는다.

게다가 지난 몇십 년간 입법부를 민주당이 압도적으로 주도했고, 보수 진영은 약화되었다. 현 청년 극우들이 펼치는 피포위 심리나 음모론적 사고는, 이런 정치적 구도 변화 속에서 터져 나온 것으로 보인다는 해석인 것으로 보인다. 과거 386이 기성 세대의 구조적 우월성에 맞서며 음모론적 레토릭을 사용했듯이, 지금 청년들도 "주류 세력"으로 인식된 민주당에 대해 비슷한 무기를 휘두르는 모습이 나타난다는 것으로 보인다.

흥미롭게도, 이런 세대 갈등의 패턴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2020년대 들어 여러 선진국에서 온라인 밈과 소셜 미디어로 무장한 청년 극우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자신들이 "기성 기득권"의 억압 속에 있다고 느끼고, 그에 저항하려는 심리를 드러낸다. 다만 한국의 경우, 정치 체제가 이런 불만을 흡수하는 방식이 상대적으로 선진화되어 있을 수 있다는 관점도 제기된다. 선거와 탄핵 같은 제도적 기제가 분노의 출구 역할을 하면서, 극우 세력의 극단화를 어느 정도 억제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 구도도 언젠가는 뒤집힐 수밖에 없다는 반응이다. 오늘의 청년은 내일의 기성 세대가 되고, 새로운 청년층이 계속 등장할 것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를 죽이려는 아들"의 욕망은 역사의 반복 속에서 거듭 나타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운명처럼 보인다. 세대가 바뀌어도, 분노와 타도의 욕망은 남고, 타깃만 교체된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그 386이 민주화 했다고 꺼드럭거리며 부정부패 일삼고 그놈의 '내로남불 위선'을 부리는 세력을 살해하고 싶은게 지금 2030청년 극우들이죠.

원본 출처: 클리앙 모두의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