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외출 앞, 항상 같은 말이 나온다. "아이 좀 봐줄 수 있어?" 한 번, 두 번도 아니고 매번 그렇게 물어본다. 아내는 그 말 들을 때마다 묘한 불편감을 느낀다. 악의가 있는 건 아닐 테지만, 뭔가 자꾸 걸린다.

왜 이 말이 걸릴까. '봐줄 수 있어?'라는 표현이 하는 일을 따져보면 명확해진다. 돌봄을 '도움'으로 규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도움은 선택적인 것으로 보인다. 원래는 누군가 혼자 하는 일이고, 그 사람이 바쁜 틈에 누군가 손을 빌려주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반대로 말하면 이렇게 된다. '봐줄 수 있어?'라는 문장 속에는 아이를 보는 것이 '기본값'이라는 전제가 숨어 있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기본값은 누군가 한쪽으로 고정된다.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은 원래 그것이 요청자의 책임이 아니라는 신호를 무의식적으로 보내는 셈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 비대칭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이 남녀의 외출 태도 차인 것으로 보인다. 아내는 밖에 나갈 때, 남편에게 "아이 봐줄 수 있어?"라고 묻지 않는다. 그냥 나간다. 따로 양해를 구하거나 미안해하지도 않는다. 두 명이 부모인데, 아이를 보는 것이 남편의 책임이기도 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하고, 요청할 필요 같은 건 없다. 그런데 남편은 나갈 때마다 "미안해, 고마워, 봐줄 수 있어?"라고 말한다. 매번 그렇다. 그 문장들이 전하는 뉘앙스는 명확하다. 넌 기본적으로 아이를 봐야 하는 사람이고, 나는 잠깐 빠져나가는 사람이라는 역할 구분이 거기에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남편의 의도는 아마 악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양심껏, 예의 바르게 행동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냥 예의 바르게 물어본 거 아니냐"는 반박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예의라는 이름 아래 묻혀 있는 것은 구조다. 매번 "봐줄 수 있어?"라고 물을 때마다, 그 순간마다 육아의 기본값은 자동으로 아내에게로 고정된다. 아무도 공식적으로 그렇게 선포한 적은 없지만, 작은 말들이 쌓이고 반복되면서 어느새 그것이 일상의 규칙이 되어버린다. 한 달에 몇 번, 일 년에 몇십 번. 매번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아, 넌 기본값이 돌봄이구나"라는 메시지가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전해진다. 말투 하나가 가정 내 책임의 무게를 어떻게 나누는지,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결정하고 있는 셈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불편감과 위화감은 이 아내 혼자만 느끼는 것이 아닐 것으로 보인다. 부부 사이의 작은 말 하나가 책임의 무게를 다르게 느끼게 한다는 경험은, 많은 이들에게 낯선 것이 아닐 것으로 전해진다. 말의 악의 여부와 무관하게, 그 말이 시간 속에서 누적되고 강화되면서 관계의 구조를 만들어간다는 점을 체감하는 사람들 말인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아이가 우리 둘 다 부모인데 나한테 봐줄 수 있냐는 게 무슨 말이에요. 우리 아이니까 당연히 남편도 보는 거잖아요.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