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유세장에서의 한 장면이 기록된다. 차별금지법의 처리 시기를 묻는 질문이 던져졌고, 그에 돌아온 대답은 '다음에'였다. 현장에 모인 지지자들도 그 대답에 함께 목소리를 높였다고 한다. 당시 미뤄도 되는 의제로 처리된 셈이었다.

시간이 흘렀다. 518에 대한 비하 발언이 불거졌다. 이에 대해 왜 강력한 대응이 나오지 않는가 하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정책적·정치적 응대가 약하지 않은가 하는 지적이 이어졌다. 바로 그 순간 어떤 질문이 돌아온다. 과거 당신들이 차별 관련 법안을 '다음에'라며 미루지 않았는가 하는 물음인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 맥락을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점이 드러난다. 차별금지법은 2000년대 초부터 발의와 철회를 반복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정치적 부담이 커질 때마다 뒤로 밀려나는 패턴이 있었다고 지적된다. 단순히 한 번의 실패가 아니라, 수십 년에 걸쳐 반복된 유예였다는 분석이 있다. 이는 특정 정부나 정치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정치 전반에서 반복되어 온 구조라는 의견도 나온다.

대선 국면도 이 패턴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지적인 것으로 보인다. 선거 승리나 지지층 결집이 최우선 과제로 여겨질 때, 상대적으로 불편한 의제들은 자연스럽게 후순위로 밀려났다고 한다. 즉, 의도적인 무시라기보다는 구조적 선택이었을 수 있다는 해석도 있다. 당사자들 입장에서는 더 급박한 과제가 있었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다음에'라는 표현 자체가 주목할 만하다. 한국 정치와 지지층의 관계에서 이 말은 단순한 미루는 약속을 넘어선다. 불편한 것을 회피하면서도 명시적으로 거절하지 않는, 일종의 사회적 타협이기도 하다. 지지자와 정치인 사이에서 묵시적으로 공유되는 신뢰의 언어였다고 할 수 있다. 그 순간에는 양쪽 모두 만족한 것으로 전해진다. 의제는 뒤로 미뤄졌지만, 관계는 손상되지 않았다고 본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비판을 보면, 이러한 과거의 선택이 현재에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를 다시 문제삼고 있다는 지점이 중요하다. 차별과 혐오에 강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과, 과거 그 차별의 법제화를 미뤄왔던 경험 사이의 불일치가 지적되고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한쪽에서는 현재의 대응이 부족하다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그렇다면 과거는 왜 달랐는가 하고 묻고 있다. 이 질문과 비판의 간격이 오히려 커지고 있지 않은가 하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만약 이런 패턴이 계속 반복된다면 어떻게 될까. '다음에'라는 약속은 더 이상 신뢰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 회피와 미루기의 언어로 굳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있다. 불편할수록 미뤄질 수 있다는 불신이 계속 쌓이면 정치적 신뢰 자체가 손상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논란은 단순히 과거의 선택을 문제삼는 데에만 있지 않다는 해석이 있다. 오히려 앞으로 정치권과 지지층이 어떻게 불편한 의제를 다룰 것인가 하는 구조적 질문으로 읽히고 있다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다음에'를 다시 쓸 수 있을까, 아니면 그렇게는 더 이상 할 수 없을까 하는 물음이 제기되고 있다고 보인다.


📌 원문 발췌

당시 대선 유세에서 차별금지법 언제 처리되냐는 물음에 '다음에'를 외쳤다. 지금 518 비하에 왜 강하게 대응하지 못하냐는 지적이 나온다.

원본 출처: 클리앙 모두의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