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논객이 2011년에 특정 매체에 기고했던 비판 글로 인한 악플의 고통을 인스타그램에서 꺼냈다. 자신이 받은 악플의 무게감, 그것이 어떻게 마음을 흔들었는지를 호소했던 것. 그런데 한 커뮤니티 사용자는 흥미로운 질문을 던졌다. 그 사람도 비판하지 않았는가, 라는 것이었다.

원글에 따르면, 논객은 기고문뿐 아니라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을 통해 특정 인물들을 향해 지속적으로 비판의 말을 올렸다. 단순한 입장 표현이 아니라, 감정적 톤이 깊게 담긴 형태로. 그렇다면 자신이 받은 악플도, 어쩌면 자신이 다른 이들을 향해 던졌던 비판 방식의 거울상일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 커뮤니티 사용자의 지적이 날카로웠다. 논객의 비판 글들은 "알맹이가 없었다"는 평가였다. 표현은 화려했고 문장은 세련되어 있었으나, 상대 주장에 대한 구체적 반박이나 논리적 근거는 찾기 어려웠다는 의미다. 대신 자신의 감정과 감상을 "진공포장된 문장"으로 감싸, 그럴듯해 보이지만 속은 공허한 비난 형태였다는 평가로 이어진다.

비판 글쓰기에서 '문장력'과 '논리적 설득'은 동일하지 않다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세련된 문체와 화려한 표현이 글을 돋보이게 하지만, 그것이 자동으로 '타당한 비판'을 만드는 건 아니다. 오히려 형식이 화려할수록, 내용의 빈틈이 더 선명해질 수도 있다. 독자들은 그 간극을 감지한다. 그리고 감정만 배설된 글이라고 느껴질 때, 비판자는 피해자가 아니라 또 다른 가해자로 인식된다.

원글 작성자의 평가에 미묘한 층위가 있다. 인스타그램 장문이나 기고보다, 트위터에 올린 글들에는 "허세가 없었다"는 평이었다. 솔직했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이는 매체의 형식이 글의 톤에 얼마나 강하게 작용하는지를 보여준다. 140자 제약 안에서는 문장을 화려하게 포장할 여유가 없다. 의도가 직설적으로 드러난다. 거칠 수도, 진정성 있어 보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감정을 위장한 형태는 아니라는 인상이 생긴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 사건의 핵심은 '검증'에 있었다. 비판이 정당한지, 상대방이 잘못했는지는 부차적이 된다. 대신 '그 비판을 어떤 방식으로 제시했는가'가 중심이 된다. 화려한 문장으로 포장한 감정 배설은 독자에게 설득이 아닌 자기중심적 불평으로 읽힌다. 비판자는 자신이 옳다고 믿지만, 수신자는 그 글을 또 다른 악플로만 인식할 수 있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아이러니다. 누군가를 비판하는 사람이 비판받는 이유는, 상대의 잘못이 아니라 자신의 표현 방식 때문일 수도 있다는 점 말인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비난에 어떤 알맹이가 없고 상대의 말의 진의와 내용에 대한 비판 보다는 그저 자기의 감상과 감정배설을 진공포장된 문장으로 그럴듯? 써대고 있을 뿐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나마 트윗글은 허세없이 솔직하긴합니다.

원본 출처: 클리앙 모두의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