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지역 정책의 모순을 지적하는 글이 올라왔다. 한 지자체가 길고양이 중성화 사업(TNR, 포획·중성화·방사)을 추진하면서 '사람과 동물의 조화로운 공존'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는 것이 발단인 것으로 보인다.
문제의식은 명확하다. 이 '공존'이라는 구호가 모든 동물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지적인 것으로 보인다.
먼저 TNR 사업 자체의 실효성이 도마에 오른다. 실제로 일부 국가들(터키 포함)에서는 TNR의 고양이 개체수 감소 효과가 검증되지 않는다는 지적으로 정책 재검토에 나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동체가 공공 재원을 들여 계속 추진하는 사업이 과학적 근거가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심이 제기되는 셈인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단순한 정책 효율성 논쟁에만 머물렀다면 학술적 토론의 영역이었겠지만, 글쓴이가 지적하는 더 근본적인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같은 지자체 내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대비가 극명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쪽에서는 길고양이 보도자료를 정기적으로 배포하면서, 다른 쪽에서는 멸종위기종들이 제대로 된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글쓴이가 구체적으로 든 사례들을 보자. 한 지역의 섬에 서식하던 멸종위기 조류는 눈에 띄는 보호 조치 없이 방치되고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사례는 지역 하천의 개 수영장 건설 사업인 것으로 보인다. 이 공사 과정에서 그 하천에 살던 멸종위기 생물들의 서식지가 훼손되었다고 지적한다.
이렇게 놓고 보면 궁극적인 질문이 나온다. '공존'이라는 단어는 어느 종을 대상으로 할 때만 의미 있는 것 아닌가.
글쓴이의 표현을 빌리면, 이 모순이 누적될수록 "공존이라는 단어 자체가 역하게 느껴지는" 지경에 이른다는 것으로 보인다. 같은 지자체 정책 안에서 길고양이는 보도자료로 가시화하고 홍보하면서, 생존이 달린 멸종위기종의 서식지 훼손은 막지 못한다는 것이 정책의 실제 우선순위를 명확히 드러낸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나름의 합리화가 가능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길고양이 사업이 가시적이고 대중적 관심을 얻기 쉽다면, 멸종위기종 보호는 장기 투자가 필요하고 눈에 띄는 성과를 홍보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있다. 예산 배분 과정에서 후자가 밀릴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하더라도, '공존'이라는 거대한 구호를 내걸고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부 동물은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나머지는 외면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면 그것을 과연 '공존'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이것이 해당 글 댓글에서 나오는 주요 비판이라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사람과 동물이 조화롭게 공존'... 뿔쇠오리는 그 공존하는 동물에 해당 안 되겠죠.
원본 출처: 클리앙 모두의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