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이 도래할 때마다 정치권에서 중심이 되는 화제가 있다. 바로 '중도층 확보' 또는 '중도 확장'이라는 전략인데, 경쟁 구도가 치열한 선거일수록 좌우 정당 모두 이 담론에 집중하곤 한다. 일부 선거에서는 한쪽이 극단적으로 우위에 설 때 이 화제가 잠시 퇴색하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일시적일 뿐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는 온라인 게시물이 눈에 띈다. 정말로 '중도 확장'에 성공한 선거 사례가 있었는가 하는 것. 이 글쓴이는 수십 년의 한국 정치사를 되짚어 보며, 중도 공략에 성공한 경우를 찾기 어렵다고 지적한 것으로 전해진다. 매번 반복되는 '중도 확장론'의 화려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항상 좌우로 나뉘어 왔다는 관찰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 글쓴이의 분석에 따르면, 근본적인 문제는 '중도' 자체의 정의 불명확성에 있어 보인다. 중도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실제로 매우 이질적인 정치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 어떤 사람은 정치인들의 갈등 자체가 싫어서 중도라 칭하고, 또 다른 사람은 특정 쟁점별로 지지 대상이 바뀌는 부동층일 수도 있다. 더러는 순수하게 좌우 진영에 모두 회의적인 사람도 섞여 있을 터인 것으로 보인다. 결국 중도라는 라벨 아래에는 공통분모가 거의 없는 다양한 집단이 무더기로 포함되어 있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정치권의 중도 공략 전략이 본질적인 오류를 안고 있다는 함의를 담는다. 마치 하나의 정책으로 이질적인 수많은 사람들을 한 진영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 자체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것. 정치인들이 중도를 겨냥해 애매한 메시지를 내보낼수록, 오히려 자신의 기존 지지층은 정책 방향성을 의심하고, 진정한 부동층도 선택의 준거를 잃는 악순환에 빠진다는 분석인 것으로 보인다.
더 역설적인 현상도 있다. 글쓴이의 관찰로는, 정당들이 좌우의 노선을 더욱 뚜렷이 하고 일관성 있게 추진할 때 오히려 중도층의 선택이 더욱 명확해진다는 것. 애매한 중도 공략 메시지보다는, 각 진영이 자신의 철학을 명확히 드러낼 때 부동층도 어느 쪽이 자신의 가치에 더 부합하는지를 판단하기 쉬워진다는 뜻으로 읽힌다. 마치 물감이 희석되어 흐릿해질 때보다, 원색이 또렷할 때 색상 차이가 더 선명해지는 것처럼.
이렇게 보면 지난 수십 년 선거의 반복 속에서 하나의 패턴이 드러난다. 정당들이 중도를 겨냥한 '확장 정책'에 몰두할수록, 실제로는 자신의 지지층 결집력도 약해지고 중도층도 명확한 기준을 잃는 악순환 구조라는 것. 반대로 신뢰할 수 있는 일관성 있는 정책과 노선을 오랫동안 추진해 나갈 때, 중도는 자연스럽게 어느 한 진영으로 기울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해석인 것으로 보인다. 중도 '확장'이라는 외부 공략이 아니라, 자신의 일관된 정책 추진이라는 내적 신뢰성이 중도를 끌어당기는 더 강력한 자석이 될 수 있다는 것.
물론 이것은 한 이용자의 개인적 경험과 사고에서 나온 관찰일 뿐인 것으로 보인다. 통계나 학술적 근거가 있는 분석은 아니다. 하지만 매 선거철마다 같은 화두를 들고 나오면서도 실제로는 항상 좌우로 나뉘어온 정치 현실을 보며, 정치권이 놓치고 있는 본질이 혹시 이 지점에 있을 수도 있다는 문제 제기처럼 다가온다.
📌 원문 발췌
중도는 하나의 모습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좌나 우 보다 더 많은 성향, 색깔, 이념을 가진거 같습니다. 그런데 중도를 위한 정책에 의해 나오는 것 보다 좌와 우가 더욱 뚜렷해 질때 중도인 사람들이 더 쉽게 결정하는 것 같습니다.
원본 출처: 클리앙 모두의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