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익명 게시판 글쓴이가 올린 회고담이 있다. 96년 *** 대침투작전에 수색대원으로 참전했고, 마지막 *** 작전까지 경험했던 사람인 것으로 보인다. 평범한 시민처럼 보이지만 실전 군사 경험을 가진 사람. 그가 12.3 밤 왜 현장으로 달려갔는지, 그리고 지금 어떤 감정을 안고 있는지를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절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여달라는 간절한 외침. 그 목소리가 정확히 누구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 목소리가 이 사람의 마음을 흔들었다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움직였다. 준비가 철저한 것으로 전해진다. 에너지바와 물을 챙겼다. 그것은 즉흥적인 선택이 아니었다. 장시간 현장에 머물 것을 염두에 둔, 계획된 준비였다. 필요한 것들을 챙기는 순간 이미 결심은 굳어져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눈에 띈 것들이 있었다. 하늘 위로 헬기가 떴다. 지면에는 군과 경찰의 장갑차량들이 줄을 섰다. 특전사 인원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평범한 도시민이라면 이 광경만으로도 두려움에 압도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이 사람은 다르게 봤다. 과거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96년 *** 대침투작전에서 수색대원으로, 그리고 *** 작전까지 참전했던 경험. 그 경험은 현장에서 무엇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한눈에 읽을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 군과 경찰이 얼마나 진지하게 움직이고 있는지. 상황이 얼마나 진전되고 있는지. 이것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모든 게 보였다고 할 수 있다.

그 순간 뇌리를 스쳤던 생각은 어두웠다. 혹시 이것이 역사에 남을 비극이 될 수 있다는 우려. 제2의 비극 같은 사건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절망감. 그런데도 그곳에 서 있던 자신을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이것이 이 회고담의 핵심인 것으로 보인다. 절망과 자부심이 동시에 존재했다는 것. 상황의 심각성을 느끼면서도, 그 현장에 있기로 한 자신의 선택을 긍정했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책임감이었을지도 모른다.

초등학생 아들이 있다. 나중에 그 아이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었을 것으로 보인다. '아빠는 그 자리에 있었어. 아빠가 거기서 싸웠어.' 아버지로서 아이에게 보여줄 수 있는 한 가지 행동. 그것이 그 밤의 의미였다고 생각했을 것으로 보인다. 아이에게 설명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 자체를 나중에 말해주고 싶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 말이 아이의 마음에 어떻게 남을지는 아버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순간은 자부심이 가득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났다. 이제 이 글쓴이를 짓누르는 것은 절망이나 자부심이 아니다. 절실한 목소리에 응답했던 그 순간의 에너지는 이제 찾기 어렵다고 한다. 힘이 빠졌다. 슬퍼졌다. 그 밤의 선택이 지금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다는 무력감이 남았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혹은 그 이후에 일어난 일들이 자신의 기대와 달랐을 수도 있다. 절실한 목소리에 응답해서 현장에 섰던 모든 선택들이 어떤 의미 있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96년의 경험, 그날 밤의 선택, 아들에게 했던 말들. 모든 것이 지금은 다르게 느껴진다고 한다. 그 모든 것을 떠올릴 때마다 슬프고, 무겁고, 무력한 감정이 찾아온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초등학생 아들에게도 그날 아빠는 저기에서 싸웠다고 말했었는데 지금은 뭔가 슬퍼집니다.

원본 출처: 딴지일보 자유게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