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부터 병원 검사실에서 나온 그 순간, 화면에 떴던 태아의 성별 확인이 마치 무언가 무거운 게 가슴에 내려앉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들. 그것도 두 번째 아들이라는 초음파 결과 앞에서 눈물이 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소식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집에 돌아온 후 하루 종일 누워만 있어야 했던 그 심정을 돌이켜보면, 단순한 호르몬 변화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깊이가 있어 보인다.
자매라는 존재가 없이 자라온 어린 시절이 자꾸 떠올랐다. 혼자만 자라면서 느껴야 했던 외로움은, 시간이 갈수록 더 또렷하게 기억되는 감정이었다. 언니가 있는 친구, 여동생이 있는 친구들을 보며 그들의 모습을 부러워했던 기억들이 연쇄적으로 밀려왔다. 남다른 친밀감, 공유할 수 있는 일상, 그리고 누군가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다른 세상처럼 느껴졌던 것들이 모두 떠올랐다. 그래서인지 자녀를 가질 때면 은근히 원했던 게 있었다. 딸 하나. 정확히는, 친구처럼 지낼 수 있는 딸.
딸 하나를 바란 마음은 표면의 성별 선호보다 훨씬 복잡한 심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성별을 원한 게 아니라, 자신이 경험하지 못했던 여자형제와의 유대를 자녀를 통해 다시 한 번 그려보고 싶은 심리였을 수 있다. 친구처럼 대화할 수 있고, 감정을 공유할 수 있고, 같은 입장에서 조언을 해주고받을 수 있는 누군가. 더 나아가 나중에는 함께 늙어갈 수 있는 여자 가족이 옆에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 그것은 성급함이나 욕심이 아니라 자신 안의 결핍을 메우려는 매우 인간적인 시도였을 수 있다.
그런데 아들 둘이라는 현실 앞에서는 몸과 마음이 함께 무거워진다. 성별에 대한 실망감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큰 것은 자신이 나중에 혼자 남겨질 것 같다는 두려움인 것으로 보인다. 여성으로서 나이를 먹어가면서 여자형제의 존재가 갖는 심리적 무게감도 있고, 세상에 홀로 남겨졌을 때의 외로움을 미리 예상하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태어날 아들들에게 미안한 죄책감도 밀려온다. 아이들 자체에 대한 실망이 아니라, 자신의 결핍이 투영된 것 아닌지 자책하는 마음. 자신의 슬픔과 그 감정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압박감 사이에서 흔들리는 상태인 것으로 보인다.
임신 전후로 이런 감정을 경험하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성별 선호가 나쁜 감정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자신의 성장 경험, 겪어야 했던 결핍,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현재의 상황이 아닌 다른 가능성에 투영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성별 선호라는 형태로 드러나지만, 그 밑바닥에는 훨씬 깊은 심리적 맥락이 있다. 아이의 성별을 선호한다는 감정 너머에는 자신이 채우지 못한 결핍, 관계, 감정이 숨어 있을 수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감정을 나눈 한 익명 게시판의 임산부 글쓴이도,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앞으로의 감정 변화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현재의 슬픔과 혼란을 인정하면서도, 시간이 지나면서 아들들 속에서 다른 의미와 기쁨을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을 함께 열어두는 것이 지금 필요한 마음가짐일 수 있다. 임신 기간이 남아 있는 동안, 그리고 아이들이 태어난 후 육아 과정에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어떻게 변해갈지는 아무도 알 수 없으니까.
📌 원문 발췌
오전부터 성별확인하고 눈물 댓발 흘리고 집에 들어왔어요. 꼭 친구같은 딸하나만 있었으면..둘도 안바래 딸 꼭 하나만...했는데..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