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익명 게시판 글쓴이가 제기한 논점은, 특정 미디어의 장기간 친명 활동에도 불구하고 현재 진영 내에서 갑자기 '반명'으로 낙인찍히게 된 현상을 다루고 있다. 이는 팬덤 정치에서 비판의 기준이 얼마나 불안정하고 자의적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지적되고 있다.

글에 따르면 해당 미디어는 ***건 소식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고 알렸다. 순방 현장 소식, 정책 홍보, 대통령 찬양에 해당하는 콘텐츠를 규칙적으로 제작했다는 설명인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사건을 포함한 대통령 관련 핵심 이슈들도 가장 열심히 보도해왔다고 전해진다. 매일같이, 때로는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압도적인 양의 친명 관련 콘텐츠를 생산한 곳이었다는 평가가 있다.

이렇게 지속적인 지지와 옹호를 해온 미디어가 왜 갑자기 '반명'이 되었을까. 글쓴이는 이 현상을 단순한 일회적 사건으로 보지 않는다. 대신 과거의 선례에 빗대어 더 깊은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전 정부 시절을 돌이켜보면 유사한 패턴이 분명히 존재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과 *** 같은 미디어는 친문 콘텐츠를 대량 생산하는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온언론이 제기하던 여러 정치적 의혹과 논란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지 않으면서, 특정 정치인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방어하는 데 주력했다고 지적된다. 자신들의 정보 채널과 영향력을 통해 친문 진영을 강화하고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관련 특정 사안에서 그들이 '기대에 맞지 않는' 발언을 하거나 보도하자, 상황이 급변한 것으로 전해진다. 같은 진영 내에서 그들을 '반문'이라고 비난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수년간 쌓아올린 친문 활동의 기록, 진영 내에서의 신뢰와 지지가 단 하나의 이슈로 무너졌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전의 모든 충성도가 순간 무효화되는 경험을 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현재의 *** 상황과 정확히 일치하는 구조를 보여준다. 글쓴이가 언급하는 '반명'이라는 낙인도 같은 메커니즘 위에 있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수년간 친명 콘텐츠를 생산하고 대통령을 옹호해온 방대한 기록이 특정 시점의 일탈 또는 진영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단 하나의 발언으로 완전히 부정되고 있다는 의미다.

이 현상이 지적하는 더 근본적인 문제는 팬덤 정치에서 '충성도'의 기준이 얼마나 주관적이고 자의적인지를 드러낸다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미디어가 누적해온 활동 기록, 지지의 양과 깊이, 오랫동안 진영을 위해 헌신해온 역사는 결국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다. 진영의 절대 기준에 한 치도 어긋나는 단 하나의 발언, 단 하나의 보도 방침이 모든 것을 무효화시킨다. 미디어가 얼마나 오래, 얼마나 열심히, 얼마나 일관되게 진영을 위해 활동했는지는 순간 모두 의미 없어진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는 이를 통해 역설적인 결론을 제시한다. 결국 ***과 ***, 그리고 현재의 *** 미디어도 어떤 기준에서든 진영의 눈에는 모두 '반명'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진영 논리 속에서는 완벽한 충성도가 존재하지 않으며, 그 기준이 객관적이지 않기 때문이라는 지적인 것으로 보인다. 특정 진영에 완전히 종속되고자 했던 미디어라도 진영의 변덕스러운 기준 앞에서는 무력하다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 원문 발췌

***건 업데이트하며 알려준곳도 ***임. 순방소식 정책홍보 대통령찬양으로 해준곳도 ***임. 그런데 이제 반명이라고?

원본 출처: 딴지일보 자유게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