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 온라인 커뮤니티의 한 대학생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흥미로운 건 글의 구조다. 이 글쓴이는 자신의 학벌을 먼저 인증한 뒤 본론을 시작한다. 왜일까. 글쓴이의 설명은 명확하다. 진정한 토론이 가능하려면 상대방이 말을 경청할 환경이 필요했고, 그 환경을 만들기 위해 학벌 인증이 선제 조건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으로 보인다. 이 상황 자체가 한국 사회에서 학벌이 얼마나 절대적인 권력으로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좋은 대학의 이점은 분명하다고 글쓴이는 인정한다. 주변 환경이 다르고, 만남의 질이 달라지며, 처음 만나는 사람들의 평가도 달라진다. 취업 시 대학명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좋은 대학을 목표로 노력하는 것은 합리적이라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여기가 시작일 뿐인 것으로 보인다. 진짜 문제는 그 다음부터라고 글쓴이는 강조한다. 입시는 특정 시점의 특정 역량만을 측정하는 것이지, 이후 수십 년의 인생을 결정짓는 지표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인 것으로 보인다. 좋은 학벌이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능력 있고, 일을 잘 하고, 인생을 성공적으로 산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반대로 덜 알려진 대학 출신이라고 해서 덜 노력했거나 능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하는 것도 틀렸다. 입시 성적 하나로 인생 전체를 평가하는 관행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주변을 자세히 보면 이런 모순이 곳곳에 드러난다는 지적인 것으로 보인다. 명문대를 나왔어도 자신과 맞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면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편 학벌이 화려하지 않아도 자신의 일을 잘 찾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이들은 훨씬 더 안정적인 삶을 누리고 있다. 이 패턴은 생각보다 자주 눈에 띈다고 언급한다.

더 흥미로운 역설이 등장한다. 글쓴이가 다니는 대학 내에도 지방 소재 대학 출신 교수들이 상당수 있다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반면 그 대학의 재학생 대다수가 같은 대학의 교수가 되지 못한다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한다. 학벌이 절대적 경쟁력이라면 이런 현상은 설명이 안 된다. 결국 합격 이후부터는 개인의 실력, 태도, 성실함이 더 결정적인 변수로 작동한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학벌을 기준으로 두는 것과 학벌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 사이에는 명확한 선이 있다고 주장한다. 연애 상대를 선택할 때 학력을 고려하는 것은 개인의 판단인 것으로 보인다. 직장에서 지원자의 학벌을 참고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 기준으로 누군가를 무시하거나, 노력하지 않은 사람으로 낙인찍거나, 수준이 맞지 않는다고 단정하는 순간 그것은 학벌주의가 된다는 것. 이 경계를 넘는 순간 개인의 선택에서 구조적 폭력으로 전환된다.

글쓴이는 결론적으로 대학의 본질이 흐려지고 있다고 우려한다. 대학은 배움의 공간이어야 하는데 사람을 등급 매기는 간판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지적인 것으로 보인다. 좋은 대학을 목표로 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만, "학벌이 없으면 끝장날까"라는 불안감으로만 입시를 치르는 현실은 결국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다고 본다. 중요한 건 대학 입시가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라는 메시지다.


📌 원문 발췌

학벌이 좋은 출발점이 될 수는 있어도, 그게 결승선은 절대 아니다.

원본 출처: 인스티즈 익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