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8년 7월, 한 지역에서 과거시험을 보러 온 학자의 하루가 기록으로 남아 있다. 당시 학자 ***는 지방에서 ***로 올라와 과거를 준비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침 일찍 옷을 갈아입고 아침 식사를 하고, 오전 5시에서 7시 사이에 ***에 들어가 시험을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오 무렵 답안을 모두 작성하고 나온 그는 친구들을 찾아다녔다. 먼저 친구 ***를 찾으러 다니다가 만나지 못했고, 다른 친구 ***와 함께 ***로 향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이 도착한 곳에서 일어난 일은 흥미로운 기록으로 남겨졌다. 시험을 마친 후 배고픈 두 친구는 냉면을 시켜 먹기로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학자의 일기에 기록된 이 장면이 주목받게 된 것은, 당시 사용한 '한자 표현'의 차이 때문으로 보인다.
『***』에 기록된 내용을 살펴보면 이 점이 명확해진다. 아침 식사는 "買朝飯喫(매조반끽)"이라고 적혀 있다. 여기서 "買"는 '사다'라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반면 냉면을 먹은 부분은 "呼冷麵喫(호냉면끽)"이라고 적혀 있다. "呼"는 '부르다'라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같은 음식을 먹는 행위인데, 기록자가 다른 한자를 써서 구분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차이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의 기록자가 '직접 사서 먹는 것'과 '부르는 것'을 의식적으로 구별해 적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아침 식사는 직접 가서 사먹는 방식이었고, 냉면은 부르는 방식으로 시켜 먹는 것이었다는 의미로 보인다. 즉,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직접 가는 방식과 음식을 주문해서 받아 먹는 방식을 서로 다른 표현으로 기록했을 가능성이 높다.
조선 후기 ***의 상황을 생각하면, 이러한 기록은 더욱 현실적인 배경을 갖게 된다. 당시 도시에는 주막과 음식점이 밀집해 있었으며, 과거시험을 보러 온 지방 출신 응시자들이 임시로 체류하고 있었다. 이들이 식사를 해결하려 할 때, 근처 음식점에 부탁해 음식을 받아 먹는 방식이 자연스럽게 생겨날 수 있는 환경이었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서비스를 이용할 사람도 많고, 제공할 음식점도 충분했던 그 시간과 장소에서 배달이라는 개념이 실제로 작동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현대에는 배달 문화를 근대 이후의 산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 기록은 적어도 1768년에 이미 음식을 주문해 받아 먹는 행위가 존재했으며, 그것이 실제로 이용되는 방식이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자 두 글자의 선택이 무작위가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면, 조선의 배달 문화는 단순한 우연이 아닌 사회적 필요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 원문 발췌
呼冷麵喫(호냉면끽)에서는 呼부를 호자를 써서 사먹는것과 불러서 먹는 것을 분리해서 기록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를 한국 최초의 배달기록으로 보기도 한다.
원본 출처: 루리웹 베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