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한 변호사가 언급한 '특별한 기부자'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을 때, 한 독자는 자신의 기억 속 인물로 떠올랐다. ***의 한 주택에서 세상을 살아가던 그 어르신이, 혹시 그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독자의 첫째 이모는 오랫동안 ***의 한 복지재단에서 근무해왔다. 당시 그 재단의 대표를 요양보호사로 모시며 살피고 있던 이모는, 그 어르신에 대해 이렇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건강이 급격히 악화된 이후에도 어르신은 여전히 재단의 소식과 방송을 챙겨보며, 한 정치 지도자를 깊이 존경하고 있었다고. 기억에 남는 것은 여름날 외할머니를 뵈러 오던 어느해, 그 어르신이 민주시민활동에 참여 중인 독자에게 따뜻한 말씀을 건넸다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두 사람의 인연의 시작이었다.

당시 재단은 한 시민문화센터 건립을 추진 중이었다. 정부 지원이 아닌 온전한 시민 후원으로만 추진되는 프로젝트였기에, 재단은 후원자들에게 일일이 연락을 취해 특별 기부를 호청하던 시기였다. 독자도 형편이 어려웠지만 소액을 모아 참여했던 그때, 어르신의 고액 기부가 접수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리고 곧 한 명의 공인이 ***의 자택을 직접 방문한 것으로 전해진다. 건강상 재단 사무실을 방문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감사와 격려를 전하러 어르신의 집에 찾아간 것이었다. 그날 차려진 상은 이모가 정성껏 준비한 집밥이었다고 한다.

이 기부자는 자신의 역할을 다한 후 조용히 물러섰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현재 어르신의 상황은 극적으로 변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더 이상 거동이 불가능해진 지금, 어르신은 누워서만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놀라운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과거 거주하던 ***의 집과 축적된 재산을 거의 전부 사회 복지 기관에 기증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병원비로 남길 금액만 확보한 채, 거의 모든 것을 내려놓은 것으로 알려진다. 현재는 딸의 집에서 남은 여생을 요양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 개인의 삶이 만드는 파장을 생각해본다. 이 어르신 세대가 만들어낸 시민사회 인프라는, 개개인의 작은 결정들이 모여 이루어진 것들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고액 기부자도, 소액 후원자도 모두가 힘을 합쳐 필요한 공간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지금 거동이 불가능한 상태에서도, 그 어르신의 선택—자신의 집과 재산을 남에게 기증하는 일—이 얼마나 드문 실천인지는, 한 국가의 부의 이전 방식을 생각해볼 때 더욱 명확해 보인다. 조용함 속에 연속되어온 나눔의 가치가, 이 사회를 어떻게 떠받치고 있는지를 깨닫게 하는 순간인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이제 병원비 할 조금의 돈을 남기시고 그렇게 다 나누고 가신다. *** 집도 *** 복지재단에 기부하고 지금은 따님댁에서 요양중이다.

원본 출처: 딴지일보 자유게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