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정치 평론가를 평가할 때만 해도 다른 감정이었다는 고백인 것으로 보인다. 지적 능력은 확실히 있어 보였지만, 무언가 거슬리는 부분이 있었다는 것. 그것이 바로 '뾰족하다'는 표현으로 드러나는데, 이는 그의 논리적 직설성과 논쟁에서의 날카로운 태도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토론과 글쓰기에서 그가 보여주는 논리 스타일은 논적을 압도하는 데 효과적이지만, 동시에 상대방에게 불편함을 주곤 한다는 반응이 있다. 특정 인물을 두고 극단적으로 양극화된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라는 지적이 있다.
그런데 역사적 순간이 찾아왔다. 한 전직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던 날, 공개적인 추도식에서 이 평론가가 보인 눈물의 장면이 모든 것을 바꿨다는 것으로 보인다. 원칙과 논리로만 자신을 드러냈던 인물이 순간 순수한 감정을 드러내 보인 것으로 보인다. 그 장면은 온라인에서 광범위하게 회자되며 그의 이미지를 재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평가다. '논객'으로서의 냉철함과 거리감 뒤에 있던 인간적 진정성이 드러난 순간이었던 것. 단순한 지적 능력이 아니라 신념과 감정을 함께 가진 존재로서 그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는 경험이었다는 표현으로 남아있다.
이후 그를 따르는 방식도 흥미로운데, 그가 소속된 정당을 따라 움직였다는 것으로 보인다. 처음 한 ***에서 활동할 때 입당했고, 그가 당을 옮길 때 함께 이동했으며, 지금은 또 다른 ***에 속해 있다. 이것은 특정 개인에 대한 감정적 결속이 이념적 신념보다 강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분석이 있다. 같은 가치관의 조직이 아니라 추종하는 인물을 따라 행동하는 정치 팬덤의 심리가 드러나는 부분인 것으로 보인다.
현재 그에 대한 평가는 명확하다고 표현된다. 지식인으로서, 멘토로서, 존경의 대상으로 자리잡았다는 것. 심지어 유사한 정치 인물들도 함께 존경한다고 말한다. '뾰족한' 인상으로 시작했던 감정이 이제는 가장 깊은 신뢰와 존경으로 바뀌었다는 고백인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표현으로 끝나는 것은, 이 감정적 유대감이 일시적이 아니라 항구적인 지지로 정착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고백의 흥미로운 지점은 '논리'가 아니라 '감정'이 팬덤을 결정했다는 것으로 보인다. 지적 능력이 먼저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깊은 지지자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한 순간의 감정적 순수함, 인간적 진정성이 드러나는 장면이 수년간의 거리감을 단번에 뒤집었다는 표현인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치 팬덤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로도 읽힐 수 있다. 정책이나 이념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인물의 인간적 매력과 진정성에 이끌려 깊은 지지자가 되는 현상. 그것이 이 고백이 가진 의미라고 할 수 있다.
📌 원문 발췌
그런데 *** 대통령 돌아가시고 그 눈물을 봤을 때 ***은 저의 영원한 마음의 동지가 되었습니다.
원본 출처: 딴지일보 자유게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