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이 자녀 개인의 문제를 넘어 가족 전체를 흔드는 순간이 있다. 한 엄마가 겪은 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평범한 가정으로 보였다. 중학생 딸, 남편과의 사이도 좋고 자녀도 큰 탈 없이 자랐다고 믿었던 터였다. 그런데 학교에서 한 통의 연락을 받았다. 자녀가 또래 학생을 괴롭히고 따돌렸다는 피해 신고였다.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부모가 이 순간 느끼는 것은 이중의 충격이다. 피해 자녀와 그 보호자에 대한 죄책감이 동시에 솟아오른다. 자신의 양육이 이 지경에 이르게 했다는 자책감은 물론, 내 아이가 진짜 인간이 아닌 짐승처럼 느껴지는 순간까지 온다. 감정과 도덕적 혼란이 한 몸이 되는 경험이다. 이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으로 딸이 인간이 아닌 짐승으로 보였다고 고백했다.
더 심각한 것은, 이 감정 폭발이 가족 내 다른 형태의 폭력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학교에서 돌아온 딸을 방으로 끌고 간 남편은 통제 불능의 상태였다. 아이를 때리기 시작했고, 그 정도는 밖에서도 명확히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둔탁한 타격음과 짧은 비명이 계속 울려 퍼졌다. 어머니가 뛰어들어 겨우 말려 세웠을 때쯤 딸의 온몸은 멍투성이었다. 그리고 딸은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남편의 분노는 계속 타올랐다. 딸을 괴물 보듯 바라보며 추가로 '훈육'이라는 이름의 학대를 시도했다. 부엌의 고기 자르는 가위를 들었다. 딸의 머리카락을 자르려 했다. 어머니가 몸으로 막아서야 겨우 저지할 수 있었다.
이제 남편의 행동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본질적 질문이 생긴다. 이것이 훈육인가, 아니면 아동학대인가? 남편의 논리는 이랬다. "내 딸이 사회에 폐를 끼쳤는데, 가볍게 넘어가면 다음엔 뉴스에 나올 수도 있다." 강하게 잡아야 재범을 막을 수 있다는 취지였다. 이 주장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자녀의 폭력적 행동에 단호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기본 방향만은 타당하다.
하지만 멍이 남을 정도의 반복 구타와 가위로 머리를 자르려는 행위는 훈육의 범주를 벗어난다. 대한민국 법은 이를 명확히 아동학대로 본다. "더 심한 사고를 막기 위한 것"이라는 명분도 결국 피해자인 아이에 대한 추가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일 뿐이다. 감정이 폭발했을 때 그것을 조절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딸의 폭력과 같은 종류의 문제 행동이라는 역설이다.
배우자의 처지에서 취할 수 있는 현실적 대응이 필요하다. 이것은 딸을 두둔하거나 그 잘못을 덮으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첫째, 즉각적인 신체적 분리를 통해 추가 학대가 발생하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 둘째, 가정 내 모든 구성원이 전문가의 심리 상담을 받아야 한다. 셋째, 남편의 행동 수위가 이 정도면 형사 처벌까지 갈 수 있다는 법적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딸의 학교폭력도 심각하지만, 부모의 폭력도 같은 수준으로 심각하다는 깨달음. 그것이 자녀와 가족을 지키는 첫 걸음이다.
📌 원문 발췌
정말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고 아이를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밖에서 듣는데 둔탁한 소리가 계속 들렸고 짤막한 비명까지 들렸습니다.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