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사신 시아버지가 보내오는 농산물 택배. 처음엔 감사히 받았던 선물이 이제는 마음의 부담이 되어버렸습니다.

얼마 전만 해도 시아버지로부터 농산물이 오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좋게 조금씩만 보내 달라'고 부탁해도 계속 보내오셨던 터라, 여름이나 환절기마다 그런 불편함을 겪곤 했거든요. 그렇다 보니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택배가 끊겼고, 그렇게 조용해진 지 수년이 지났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최근 다시 시작됐습니다. 한 번에 농작물을 한 박스씩 보내오시는 겁니다.

받은 후의 현실은 생각보다 복잡합니다. 누구에게 나눠드릴지, 어떻게 소분할지, 냉동실은 충분한지, 언제까지 보관할 수 있는지—이런 작은 결정들이 반복되면서 일상 속 스트레스로 쌓입니다. 물론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정성껏 보내주신 것인데 낭비하기도 미안하고, 그렇다고 소비 속도가 따라잡기도 어렵습니다.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면 처음의 고마운 마음마저 피로함으로 변하고 말죠.

더 복잡한 것은 감정입니다. 시아버지의 선의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농작물을 기르실 수 있는 환경에 계신 것 자체가 분명 남편과 저를 생각하는 마음의 표현이니까요. 그런데 정말 솔직해지면, 이런 택배들이 반갑지는 않습니다. 차라리 원하는 것을 스스로 선택해서 조금씩 사먹는 자유로움이 더 좋습니다. 마음으로는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로는 '이번엔 어떻게 처리하지' 하는 막연한 불안감이 먼저 밀려오는 거죠.

그 감정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게 현재의 경제 상황입니다. 시아버지가 곧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실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즉, 경제적 여유가 거의 없으신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농산물을 보내실 때마다 상당한 택배비를 지불하고 계신 거예요. 그뿐 아니라 최근엔 남편의 형제에게까지 빌려서 택배 비용을 충당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보내시는 박스가 저희 집에선 처리해야 할 부담이 되어 있다니—이 모순이 정말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과거의 금전 관계가 현재의 감정을 더 깊게 만듭니다. 남편이 결혼하기 전, 시아버지께 몇천 원을 여러 차례 빌려드린 적이 있는데 한 번도 돌려받지 못했습니다. 결혼 후에도 작은 금액들이 계속 빌려달라는 요청으로 이어졌고, 더 이상은 안 된다는 판단에 그때부터 거절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마음의 거리감이 생겼던 거죠. 그래서인지 지금 시아버지의 택배를 받을 때마다 그때의 감정들이 다시 떠오르곤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말할까요? 이미 남편에게 '다음 번 택배를 보내시기 전에 먼저 연락해서 정말 필요한 게 있는지 물어봐 달라'고 부탁해 두었습니다. 남편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게 나을까, 아니면 직접 시아버지께 전화해서 상황을 설명해야 할까—이 고민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시아버지의 선의를 완전히 무시하고 싶지도 않지만, 현실적인 부담감도 더 이상 외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농산물 택배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받는 사람과 주는 사람 사이에서 발생하는 감정의 불일치, 그리고 가족 관계 속에서 마주하는 복잡한 현실입니다.


📌 원문 발췌

농작물을 한박스로 보내시는데 누구 주기도 번거롭고 일이고 말리고 소분하고 뭐하고 진짜 스트레스인데요. 그 택배비가 그냥 아까워요.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