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명절이 다가오던 시점에 불청객 같은 연락이 들어왔다. 전 시댁에서였다. 추석에 일본 여행을 가는데 손자를 함께 데려가고 싶다며, 여권이 유효한지 확인해달라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비행기표 값도 조금 도와달라는 부탁이 이어졌다. 일은 생각보다 복잡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시댁과는 같은 추석에 동남아로 떠나기로 이미 예약을 모두 마친 상태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거절은 필연적이었다. 이미 표를 끊었으니 추석에는 함께할 수 없다고 알렸다. 반응은 즉각적이고 격렬한 것으로 전해진다. 손주 도리도 못할 줄 알았느냐며, 명절에 무엇 하러 여행을 가냐는 질책이 계속 이어졌다. 전화도 여러 번 걸려왔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 갈등의 뿌리가 보인다. 남편을 사별한 것은 아이가 어린이집 다닐 때였다. 그 이후 긴 세월이 흘렀다.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전 시댁은 손자를 거의 찾지 않았다. 대신 홀로 남겨진 사람이 감당해야 했던 것은, 아이를 키우는 일 전부였다. 일을 하고, 밤이 되면 혼자인 것을 버티고, 아이의 모든 것을 결정하고 책임지는 일들 말인 것으로 보인다.
그 시간들 속에서 전 시댁은 어디에 있었는가. 남편 장례를 치른 직후 전 시댁은 모진 말들을 많이 쏟아냈다고 한다. 아마 자식을 잃은 마음의 방향이 잘못 흐른 걸 수도 있다. 하지만 당사자도 같은 상처 속에서 혼자였다. 친정부모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 험난한 시간을 버티기가 훨씬 더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재혼은 7년이 지난 후에 이루어졌다. 그 즈음부터 전 시댁의 태도가 달라졌다. 손자와의 왕래를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초반에는 아이가 방문 후 집에 와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입이 무거워졌다. 이제는 전 시댁을 다녀와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학교에 간다, 학원이 있다며 방문 자체를 미루는 핑계까지 댄다.
변화의 원인을 아이가 감지했을 가능성이 있다. 전 시댁이 어머니(글쓴이)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드러냈을 수 있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아이는 지금 사춘기를 지나는 중인 것으로 보인다. 그 예민한 시기에 할머니의 냉대를 느낀 아이가 마음을 닫은 것일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이 떠오난다. 사별 이후 전 시댁과의 관계는 무엇인가. 법적으로 강제되는 의무인가, 상호 신뢰와 감정 위에 지어지는 선택의 영역인가. 관계는 긴 시간 동안 서로를 챙기고 돕고 함께하는 과정 속에서만 만들어진다. 아이가 어렸을 때 곁에 없었던 7년의 세월은, 나중에 와서 한두 번의 방문으로 메울 수 없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뒤늦게 나타난 '손주 도리'라는 표현에는 손자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담겨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일방적인 기대이기도 하다. 이미 다른 곳에서 안정적인 관계를 맺은 아이에게, 갑자기 의무를 요구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신호가 있다. 아이 자신이 명확히 거부하고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현 시댁과의 동남아 여행을 선택한 아이의 결정은, 함께해온 시간의 무게를 보여준다. 혈연만으로는 관계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 원문 발췌
전시댁에서 추석에 일본 여행을 가는데 아이 여권 확인해달라고, 비행기값도 보태달라고 연락했어요. 저희도 이미 여행을 가기로 했다고 말씀드렸더니 '명절에 손주 도리를 해야 하지 않나'며 화를 내셨어요.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