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이 자꾸만 떠올랐다. 특히 부모와의 관계가 문제였다. 어머니는 "자식을 낳아보면 엄마를 이해할 것"이라고 자주 말했다. 힘든 양육 과정을 자식 세대가 경험하면 자연스럽게 감사와 효도의 마음이 생길 거라는 의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예상과 달랐다. 자녀를 키우면서 오히려 어린 시절에 대한 분노가 생겨났다.

원래는 부모의 심한 태도를 각오하고 있었다. 사춘기의 힘든 경험을 자식도 똑같이 할 것으로 예상했고, 그럴 때 대처할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런데 현실은 달랐다. 자신의 아들은 방문을 항상 열어두고 있었다. 이는 자신이 어렸을 때 방문을 굳게 닫아두던 것과 완전히 달랐다. 집에 돌아오면 아이는 반갑게 달려와 하루를 나누고 싶어 했다. 호르몬의 영향으로 가끔 짜증을 내기도 하지만, 곧 본인이 잘못했음을 깨닫고 스스로 사과했다.

"내가 엄마처럼 되지 않으려고 했을 뿐인데, 결과가 이렇게 다르다." 자신이 의도적으로 선택한 것들을 돌아봤다. 기분이 안 좋다는 이유로 아이에게 함부로 소리 지르지 않았다. 인격을 모독하거나 비아냥거리거나 초치는 말을 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아이를 사람 대 사람으로 대했다. 선을 넘지 않고 존중했다. 그것이 전부였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세대 간 전이(intergenerational transmission)'는 정확히 이 지점을 설명한다. 부모가 받은 양육 방식은 자동으로 다음 세대에 반복되거나, 의식적인 선택으로 단절된다. 자신은 후자를 선택했고, 아이는 그 결과를 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부모는 종종 말했다. "내가 너 도시락 싸고 밥을 해 먹이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 말을 들으며 자신은 당연히 감사해야 하고, 부모님의 희생에 보답해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자신도 이제 부모가 되어보니 다르게 보였다. 자녀를 키우는 것은 분명히 힘들다. 하지만 자신이 얼마나 힘들게 느끼든, 그것은 자신이 낳아놓은 아이에게 생색낼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낳았으니 먹이고 입혀야 한다"는 것이 부모로서 받아들여야 할 기본 책임이었다. 자신이 주관적으로 느끼는 고통의 정도를 10으로 경험했다고 해도, 자식이 받는 부담은 고작 2, 3 정도였다. 자녀는 요청하지 않은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이미 힘든 삶이 기다리고 있는 아이에게, 부모가 한 기본적인 일로 은혜를 강조하는 것은 부모로서의 도리가 아닐 것 같았다.

부모와의 관계에서 계속 들었던 말들이 있다. "부모한테 잘해라", "누구는 이렇게 효도하더라", "너는 왜 자식이 이러냐", "더 자주 전화하고 찾아와야 한다", "더 따뜻하게 해줘야 한다." 반복되는 이 말들이 귀에 딱지가 생길 정도였다. 점점 지쳐가기 시작했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부모의 감정 쓰레기통 역할까지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얘기해도 달라지지 않는 부모의 태도를 보면서 말했다. "그럼 엄마는 나한테 잘했나요?" 그러면 부모는 "언제 그랬냐"며 부인했다. 수십 년 전 일로 늙은 부모를 괴롭히냐며 원망했다. 심하면 "부모한테 그렇게 하면 천벌받아서 내가 이렇게 산다"고 했다.

이것이 효도 담론의 구조적 모순이다. 부모의 행동(원인)은 면책하고, 자식의 태도(결과)만 일방적으로 요구한다. 부모가 어떻게 양육했든 그것은 "당시 최선을 다한 것"으로 미화되고, 자식은 그에 대해 "효도"로 보상해야 한다는 논리다.

아동심리학에서 제시되는 한 가지 역설이 있다.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아 보호기관에 분리된 아이들도 부모를 향한 애착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애착 이론에서 설명하는 인간의 본능적 반응이다. 그런데 그 아이가 성장 후 부모와 거리를 두게 되면? 그때는 "부모한테 효도하지 않는 나쁜 자식"으로 낙인찍힌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아이가 거리를 두는 것은 배은망덕이 아니라, 자신의 정신 건강을 지키려는 자기 보호 기제다. 상처로 가득 찬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그 관계로부터 물러나는 것일 뿐이다.

세월이 흐르며 한 가지 깨달음이 생겼다. 자식을 키울수록 효도의 의미가 달라 보였다. 효도는 의무가 아니었다. 그것은 부모가 자식에게 베푼 인격적 존중과 사랑이 돌아오는 것일 뿐이다. 부메랑처럼. 나이를 더 먹게 되면 달라질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아마도 더 자식에게 맞춰주게 될 것 같다. 자식이 남을 욕하는 것을 싫어한다면, 아무리 답답해 죽을 것 같아도 참을 것 같다. 자신이 죽으면 그만이지만, 자식은 자신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수십 년을 더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자식이 클수록 깨달았다. 자식은 부모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존재다. 하지만 부모가 심은 상처가 너무 깊으면, 그 사랑은 보호 본능으로 바뀐다. 거리 두기는 그 사랑의 변형일 뿐, 배신이 아니다.


📌 원문 발췌

자식을 키울수록 엄마한테 화가 난다. 효도는 의무가 아니라 부모가 자식에게 베푼 인격적 존중과 사랑이 돌아오는 부메랑인 것 같다.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