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1년째, 시어머니와의 점심 약속을 위해 시어머니댁으로 향했다. 시어머니가 나왔을 때 남편은 운전석에, 본인은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창문을 내리고 "어머님,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남편도 옆에서 그 장면을 봤다. 그런데 시어머니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진짜로 싫은 것을 본 듯한, 인상을 찌푼 반응이었다.
남편은 본인이 그날 허리를 삐끗한 상태였다는 사실을 서둘러 설명했다. 차에서 내릴 수 없는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그 설명이 상황을 푸는 데는 실패했다. 시어머니와의 불편한 감정이 쌓이기 시작했다.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어차피 금방 출발할 예정이었고, 이미 11년을 함께한 사이인데, 굳이 차에서 내려 인사를 해야 하는 게 맞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일반적으로는 어른이 오면 당연히 내리는 게 예의다. 하지만 이 상황은 좀 달랐다. 시어머니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물어봤다. "어머님, 혹시 아들과 며느리가 차에서 내리지 않는 건 괜찮으신데 저는 내려야 하는 건가요?"
시어머니의 대답은 명확했다. "며느리랑 자식은 다르다. 당연히 내려서 인사해야지." 그 순간이 결정적이었다. 단순한 예절 문제가 아니었다. 시어머니의 발언은 겉으로는 상식적인 예의처럼 들렸지만, 본질은 다른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자식은 차에 있어도 되고, 며느리는 안 된다. 의무는 동등하게 물으면서, 허용은 불평등하게 나눈다. 이중 잣대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사실 이 사건은 진공 상태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11년 결혼 생활에는 이미 많은 것들이 쌓여 있었다. 시어머니는 평소에도 남편과 자주 싸웠다. 성격이 깐깐하고 잔소리가 많으셨다. 남편은 한 달에 한 번 시어머니를 찾아뵙고 있었고, 본인은 남편과 합의 후 거리를 두기로 했다. 1년에 4번. 설날, 추석, 어버이날, 생신. 그것이 둘이 정한 선이었다. 자주 안 보는 데에는 11년간 쌓인 많은 이유들이 있었고, 인사 때문에 혼난 것은 처음이었다.
차에서 내려 인사하는 것. 그것이 정말 '예절'의 문제일까? 허리가 아픈 상황에서도 시어머니의 표정이 굳어진 것, 그 뒤로 '며느리는 달라'며 내리라고 한 것을 생각해보면, 그건 물리적 행동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복종의 표현'이었다. 신체의 상태와 무관하게, 시어머니 앞에서 특정 위치를 점해야 한다는 의무감. 그것이 상징하는 위계와 통제였다.
그 일 이후로 마음의 선이 더 단단해졌다. 이미 1년 4회로 정한 경계가, 이번 사건으로 인해 더욱 확고해진 것 같았다. 예절을 명목으로 통제하려 하는 방식, 자식과 며느리를 명확히 구분 지으려는 태도. 그것이 11년을 함께해온 관계를 더 멀게 만들고 있었다. 이것이 많은 기혼 여성들이 경험하는 현실이다. 예의와 통제 사이의 모호한 경계에서, 단순한 인사가 때로는 가장 큰 갈등의 씨앗이 되는 순간들.
📌 원문 발췌
시어머님 표정이 너무 안 좋아지셨고, 며느리랑 자식은 다르다며 당연히 내려서 인사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