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결혼생활, 사실상 가장 역할을 해왔는데 아직도 "도리를 다하지 못한다"는 죄책감이 떠나지 않는다는 한 여성의 고민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왔다. 결혼 초반부터 맞닥뜨린 시댁의 기대와, 본인이 견뎌온 경제적·감정적 무게가 얼마나 컸는지를 드러내는 사연인 것으로 보인다.

혼전임신으로 결혼을 결심한 이 여성은 당시 나름 양가 기여가 균형 잡혔다고 생각한 것으로 전해진다. 본인은 20살부터 모은 약 8천만 원과 친정의 지원금 2천만 원으로 총 1억 원을 준비했고, 시댁은 약 1억 3천만 원을 지원해 집을 마련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로서는 결혼 자체가 힘든 상황을 감안하면 양쪽 부모의 지원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처럼 느껴졌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결혼 이후의 현실은 전혀 달랐다. 시댁으로부터의 전화 강요, 외모에 대한 평가, 친정 욕, 그리고 "맞벌이를 하면서도 아이 밥을 제대로 못 챙긴다"는 폭언들이 지난 8년간 계속됐다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여성이 그 8년을 어떻게 견뎌냈는가 하는 부분인 것으로 보인다. 남편의 월급이 본인 월급의 3분의 1 수준이었던 시기가 길었고, 직업의 안정성도 불안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본인은 육아휴직을 고작 3개월만 사용하고 다시 복직해, 결국 가정의 경제 기둥 역할을 견뎌냈다. 동시에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까지 챙기는 역할이었다.

그렇다면 시댁은 무엇을 더 원했을까. 용돈을 드려도 "부족하다"며 뒷담을 했고, 아이를 직접 돌보지 못하는 점에 서운함을 드러냈다. 이 여성은 정리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자신이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걸.

현재 그녀는 "거리두기"를 선택한 것으로 전해진다. 명절과 생신, 시댁 가족의 중요한 행사, 연 2~3회 정도의 여행— 기본적인 의례만 챙기는 방식인 것으로 보인다. 최소한의 도리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선택이었다.

그런데 여전히 죄책감이 그녀를 괴롭힌다. "지원금을 받았으니 그만큼의 도리를 해야 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자꾸만 떠오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익명 커뮤니티에서도 흔히 등장하는 이 논리 — "부모님 지원을 받았으면 그에 합당한 효도와 도리를 해야 한다" — 는 매우 강력하다. 이 논리는 경제적 기여를 마치 관계적 복종의 대가처럼 만든다.

하지만 여기서 놓치기 쉬운 부분이 있다. 양가 기여도가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에서도, 며느리에게만 "도리"의 기준이 유독 높다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이 여성이 사실상 가장 역할을 하며 가정을 이끌어왔어도, 그것이 시댁의 기대치를 낮추지 않았다. 오히려 경제적 역할이 크더라도 감정적·관계적 요구는 계속되는 구조다.

반면 친정은 힘들 때 도와줬고, 남편도 그 점에 감사하며 자발적으로 처가에 자주 간다. 같은 지원을 받았어도 기대 수준이 완전히 다른 것으로 보인다.

거리두기를 선택한 이 여성이 느끼는 죄책감은, 사실 자신의 이기심이 아니라 "도리" 담론이 얼마나 깊게 내면화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신호다. 지속적인 폭언과 과도한 기대 속에서 자신을 보호하는 행동이 "덜 효도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그 담론이 얼마나 오랫동안, 그리고 얼마나 일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지금 그녀 옆에는 시누이까지 나타나 관계를 더 어렵게 만들려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더 잘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결국 자신의 몸과 마음을 계속 소진시키는 악순환만 가져올 수 있다.

거리두기는 이기심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기본적인 도리는 여전히 지키면서, 동시에 자신의 정신 건강을 보호하는 선택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시댁과의 관계에서 무한정 소진되기보다, 자신의 에너지를 남편과 아이, 친정과의 관계에 더 우선순위를 두겠다는 의미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충분히 정당해 보인다.


📌 원문 발췌

시부모님께서는 이런 부분과는 별개로 계속 며느리 역할을 더 하길 바라십니다. 용돈을 드려도 부족하다고 하시고, 대체 제가 무엇을 더 해야 만족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