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할 때 우리는 명확하게 약속한 것으로 전해진다. "종교는 서로 강요하지 않는다." 시댁은 성당을 다니고 친정은 절을 다니는 상황이었다. 같은 지붕 아래 살면서도 믿음의 길이 다를 수 있다는 걸 인정한 거였다. 그 약속이 더없이 소중했던 건, 결혼 초반 몇 번의 예방적 대화를 통해 서로를 존중하겠다는 의지가 담겼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종교가 다른 가정이라면 이런 사전 조율은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는 반응이다.
그런데 아이가 돌을 지나면서부터 흐름이 바뀌었다. 시어머니가 세례 얘기를 꺼내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처음엔 가볍게 넘어가려 한 것으로 전해진다. "괜찮습니다, 아직 아이가 어리니까요" 식으로. 하지만 요청은 반복되었다. 한 번 두 번이 아니었다. 마치 내가 모르는 사이에 세례가 이미 정해진 일처럼 다루어지는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아이는 태어났을 뿐, 아직 종교를 선택할 나이가 아니지 않나"라고 생각했지만, 입밖으로 꺼내기는 점점 힘들어졌다. 시어머니가 아이를 어르고 있을 때, 어딘가 모르게 불안감이 생겼다. 마치 종교 교육이 이미 은연중에 시작된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 말인 것으로 보인다.
오늘 남편까지 입을 열었다. "그냥 한번 받게 하자"는 말이 그냥 던진 제안일 리가 없었다. 시어머니와의 대화 속에서 나온 결정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남편이 "그냥"이라고 말한 순간, 내가 지켜온 그 약속이 쉽게 무너지는 게 느껴졌다. 결혼할 때 "강요하지 않겠다"고 손을 맞잡았던 남편이, 아이를 핑계로 그 약속을 가볍게 내려놓는 게 견딜 수 없었다. 배우자가 함께 지켜주리라 믿었던 합의가, 자녀가 생기는 순간 "아이는 별개"라는 논리로 재해석되고 있었다.
혼자 울었다. 종교 때문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보다는 "우리가 약속한 게 뭐였나"라는 무력감이었다. 결혼 생활에서 약속이란 게 얼마나 쉬운 종이인지, 아이가 생기면 얼마나 간단히 무시되는지를 깨달은 순간이었다. 가장 괴로웠던 건, 그 과정에서 배우자가 나 편에 서지 않았다는 것으로 보인다. 둘이 하나여야 할 때, 나는 혼자였다.
이제 머릿속은 친정 얘기를 꺼내고 싶다. "엄마, 우리 아이 절에 가서 기도받으면 어떨까요?"라고 말하고 싶은 거다. 그렇게 말하면 남편은 뭐라고 할까. 형평성이라는 논리라면, 배우자가 친정의 종교 활동도 자녀에게 물려주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 생각 자체를 꺼내기가 두렵다. 마치 내가 시댁과 싸우려고 하거나, 아이를 종교 전쟁의 도구로 삼으려는 것처럼 여겨질까봐. 친정 얘기를 꺼내는 것만으로도 "유난을 부린다"는 평가를 받을 것 같은 두려움 속에서 혼자 또 울고 있다. 이게 정말 유난일까. 아니면 내가 약속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였던 건 아닐까.
결혼 전 약속이 자녀 탄생 후 '재협상'되는 현상은 드물지 않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 있다. 한쪽 부모가 "손주는 내 종교 신자여야 한다"는 논리를 펼 때, 배우자가 "그냥" 그걸 받아주는 순간 합의의 경계는 흐릿해진다. 남편에게는 결혼식 때 한 낮은 제스처였을 수도, 시어머니에게는 처음부터 '아직 때가 아닐 뿐' 종교 교육이 피할 수 없는 일이었을 수도 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그런 차이가 드러나는 건 아닐까.
약속의 내용보다 그 약속을 지키려는 의지가 얼마나 약한지, 그리고 누가 그 약속을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였는지가 이 상황에서 가장 큰 문제처럼 보인다. 친정 얘기를 꺼내는 게 정말 유난일까. 아니면 남편과 나눈 약속을 지키려는 정당한 요구일까. 그 경계가 이제는 너무 가까워 보인다.
📌 원문 발췌
아이 돌 지나고부터 시어머니가 세례 얘기를 계속 하세요. 오늘은 남편까지 그냥 한번 받게 하자고 해서 결국 혼자 울었어요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