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사흘을 꼬박 집 안에 갇혀 있었다. 하늘은 계속 내렸고, 창밖은 빗줄기뿐이었다. 겉으로는 휴식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다르다. 원래 계획했던 대면 회의도, 업무 일정도, 밖에서만 가능한 일들도 모두 '비가 그칠 때까지'라는 불명확한 기한으로 한 발씩 물러섰다.
이런 상황이 제주에서 흔한가? 그렇다. 제주는 내륙 지역들보다 강수 일수가 훨씬 많다. 사흘을 꼬박 비가 오는 건 드문 일이 아니라 계절마다 반복되는 패턴이다. 제주에 오래 있는 사람들이 자주 이야기하는 게 바로 이런 '비 갇힘'이다. 일정이 없어서 갇히는 게 아니라, 날씨가 강제로 모든 것을 멈춘다.
비가 쏟아지던 그 사흘간, 나는 유튜브를 틀어놓고 책을 읽었다. 사실 선택지가 그것뿐이었다. 밖으로 나갈 수 없으니까 실내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소극적인 활동을 택했을 뿐이다. 책도 좋고, 유튜브도 좋지만, 이게 진정한 휴식인지는 솔직히 의문이었다. 그동안 밀린 일정들이 자꾸만 떠올랐기 때문이다. 비가 그치면 모두 터져나올 거라는 불안감 같은 게 스며들었다.
텃밭 상태도 마음에 걸렸다. 지금 계절에 키우고 있는 채소들이 연일의 빗소리와 낮은 기온에 내내 노출되고 있었다. 비를 지나치게 많이 받으면 뿌리부터 부패한다. 동시에 추운 날씨가 지속되니 성장은 멈추고, 이미 나온 잎들은 자꾸만 시들어 보였다. 손을 쓸 수 없으니 답답함만 쌓인다. 마음 한구석에는 '혹시 모르니' 하는 걱정이 맴돈다.
날씨는 결국 풀렸다. 하늘이 개이는 그 순간부터 연기되었던 것들이 한꺼번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비가 그친 첫날부터 대면 회의 일정들이 다시 잡혔다. 이게 우연이라기보다는 제주 거주의 특징적인 리듬이다. 비에 갇혀 있는 동안 밀린 일정들이 모두 쌓여 있다가, 비가 풀린 직후에 한꺼번에 재개되는 구조다. 내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내일 서울로 출장을 다녀와야 한다는 연락이 들어왔다.
휴식이라고 생각했던 시간이 알고 보니 '정지된 시간'일 뿐이었다. 비가 있는 동안은 강제로 모든 게 멈춘다. 그리고 비가 끝나는 순간, 모든 게 동시에 움직인다. 책도 읽었고, 낭만적인 제주 거주도 경험했지만, 결국 변수는 날씨였다.
제주 장기 체류는 낭만적으로 들리지만, 현실은 좀 다르다. 날씨가 일정·작업·식물 관리·정신 상태까지 모두를 지배한다. 비가 오면 갇히고, 비가 그치면 밀린 것들이 한꺼번에 폭탄이 된다. 어쩌다 보니 모든 게 날씨의 속도에 맞춰 움직이게 된다.
📌 원문 발췌
비가 그치니 대면 회의가 잡혀서 내일 잠시 서울에 다녀옵니다. 키운 채소들이 비를 너무 맞고 날씨도 추워서 병든 듯합니다.
원본 출처: 클리앙 모두의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