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의 축하가 왜 이렇게 불편할까. 결혼식까지 4개월 정도 남은 지금, 신랑의 직업과 조건을 이야기할 때마다 자꾸 "상향혼 축하한다"는 말을 듣는다. 신랑은 공무원이고 신혼집도 알아서 마련했으며, 시댁도 나름 여유가 있다. 그 부분 자체를 부정하진 않는다.
다만 그 단어가 자꾸 거슬린다.
글쓴이는 시립기관의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다. 월급은 크지 않지만, 공공기관이라 고용이 안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본인도 일하는 사람, 자기 발 위에 서 있는 사람인 것으로 보인다. 신랑이 직급이나 조건 면에서 '더 나은' 부분이 있다면, 그게 축하받을 만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축하 방식이 동시에 자신을 깎아내리는 느낌을 준다는 것으로 보인다.
"상향혼"이라는 표현 자체가 담고 있는 것을 생각해보자. 이 단어는 결혼을 '조건의 교환'으로, '신분의 상승'으로 보는 전제 위에 서 있다. 누군가는 '위'에 있고 누군가는 '아래'에 있다는 인식인 것으로 보인다. 결혼하면서 여자가 남자의 조건으로 '올라간다'는 식의 세계관을 담고 있다. 반대말인 '하향혼'을 생각해보면 그 위계가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친구들이 악의 없이 축하하는 것이라는 건 이해한다. 정말로 축하 의도가 깔려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글쓴이가 느낀 불편함은 다른 데에서 비롯된 것 같다. 축하라는 명목 아래, "넌 조건이 덜하지만 좋은 남자 만났네"라는 뉘앙스가 은연중에 흐른다는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가치'가 직업과 경제 조건으로만 환산되고, 그렇게 환산된 자신이 신랑보다 '아래'라는 메시지를 받는 기분이 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조건 면에서 신랑이 '더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과 자기 자신의 전체적인 가치는 별개의 문제다. 사회복지사로서 누군가를 돕는 일, 공공 부문에서 사회에 기여하는 일. 그런 것들이 어떻게 경제 조건으로 단순 환산되어야 하는가. 결혼이 축하받을 만한 일인 건 두 사람이 함께하기로 했기 때문일 텐데, 그 함께함을 '누가 더 나은 조건을 가져왔는가'의 프레임으로 재단하는 게 맞는가.
글쓴이의 불편함은 조건 비교 자체보다는 '말의 구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축하받는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무시당하는 기분, 축하라고 하면서 뒤에 깔린 비하의 뉘앙스 말인 것으로 보인다. 친구들은 선의로 '좋은 결혼했네'라고 말하려던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좋음을 '네가 원래는 못할 뻔한 것을 해냈다'는 톤으로 전달되니 기분이 나빠지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축하와 비하의 경계가 얼마나 모호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읽힌다. 같은 말도 '우리 친구 잘 만났다'는 진심으로 나오면 다르고, '너도 저런 남자 만났네'라는 저의로 나오면 달라 보인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말의 의도가 선하더라도, 그것이 담는 세계관—결혼을 상품 교환처럼 보는, 여성을 조건으로 평가하는—이 수신자에게는 불쾌감으로 전달될 수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친구들이 상향혼 축하한다고 하는데 난 잘 모르겠거든. 남친이 더 나은 건 인정하는데 상향혼 소리 들을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기분이 좀 그랬어.
원본 출처: 인스티즈 익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