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투수를 가정해보자. 구속계가 가리키는 최고 기록은 시속 153km.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이 투수는 완급조절이 불가능하다. 매 투구가 정확히 153km로만 나간다. 대신 제구는 정상급인 것으로 보인다. ABS 타격존 바깥 라인까지 정밀하게 결정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치자. 마지막 조건은 구종인 것으로 보인다. 이 투수는 직구만 던진다.

이 투수가 현실의 KBO 리그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일견 153km는 상당히 빠른 속도다. 그러나 가장 큰 약점으로 보이는 것은 완급이 없다는 점인 것으로 보인다. 현대 야구의 타자들, 특히 KBO 상위 타자들은 투수의 속도 변화에 맞춰 타이밍을 조정하는 경향이 있다. 140km대 슬로우볼이 오다가 갑자기 150km대 직구가 들어오면 박자감이 깨질 수 있다. 하지만 이 투수는 항상 153km다. 타자 입장에선 처음 몇 경기가 지나면 박자를 완전히 고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마치 스톱워치를 들고 카운팅하듯이.

제구력이 우수하다는 조건은 어떨까. 존 모서리에 정확히 꽂히는 공은 분명 위협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구종이 직구 하나라는 점이 문제인 것 같다. 타자는 수 경기가 지나면서 패턴을 읽게 된다. "이 투수의 공은 항상 153km 직구고, 결국 저 위치 근처에 들어온다"는 식으로 말인 것으로 보인다. 완벽한 제구라도 그 궤적을 예측하고 스윙 스피드를 미리 정할 수 있을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다면 제구의 이점이 상당히 감소할 수 있다는 게 흥미로운 부분으로 보인다.

현대 KBO 리그의 투수들이 여러 구종을 습득하는 이유가 뭘까. 직구 하나로는 상위 타자들을 충분히 압박하기 어렵다는 게 정설인 것 같다. 같은 속도대의 직구라도 슬라이더나 체인지업 같은 구종이 섞여야 타자의 타이밍이 흔들린다고 본다. 153km는 충분히 빠르지만, 그것만 반복되면 오히려 역설적으로 타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 완급이 없으니 "이번도 153km 직구가 올 테니"라고 미리 예상하고 스윙 스피드를 맞출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 투수는 KBO에서 버텨낼 수 있을까. 초기 몇 경기는 타자들이 패턴을 파악하기 전이라 통할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가 나올 수 있다. 특히 불펜 투수로서 짧은 이닝만 담당한다면, 몇몇 삼진을 취할 여지가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리그 내 주요 타자들의 조사와 분석이 진행되면 상황은 달라진다고 봐진다. 153km 직구 하나로 지속적으로 대항하기는 점차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게 이 가정의 핵심인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최고 구속이라고는 하지만 이 투수가 던지는 공은 항상 시속 153 km 입니다. 완급조절이 전혀 안 되는 투수죠. 그런데 제구가 기가 막힙니다. 구종은 직구 하나다.

원본 출처: 딴지일보 자유게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