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크릴판에 스크래치로 그림을 긋는 체험을 준비 중이었다. 도안으로 쓸 간단한 스케치가 필요했는데, 최신 AI에 요청하면 쉽게 얻을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으로 전해진다. 마침 Claude의 Opus 5.5 모델(구독료를 지불해야 쓸 수 있는 최상위 버전)을 갖고 있었으니까.
용 그림의 밑그림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받은 결과물은 충격적이었다.
지렁이같은 것이 나왔다. 선도 제대로 된 형태가 아니었고, 마치 좌표 데이터를 그대로 풀어 놓은 것처럼 보였다. 수치와 기호들만 나열된 형태여서 도저히 따라 그릴 참고 이미지로는 못 쓸 상황이었다. 구독료를 내고 쓰는 '최고급' 모델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어라, 이 문제는 전에도 겪어본 것 같은데...
몇 개월 전 Gemini에 호랑이 밑그림을 요청했을 때의 기억이 났다. 그때는 정반대였다. 너무 정교하고 디테일한 그림이 나와서 오히려 "더 간단하게"라고 재요청해야 했었다. 그 이미지는 확실히 '그림'이었고, 따라 그릴 수 있을 정도였다. 다만 너무 잘 만들어진 게 문제였을 뿐이었다.
같은 '밑그림' 요청인데, 왜 이렇게 다를까.
이 차이는 AI 모델들의 기본 설계 방식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Claude 같은 대규모 언어모델(LLM)은 텍스트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이미지나 도형을 생성할 때, 내부적으로는 각 선의 좌표, 픽셀의 위치, 각도 같은 수치 정보로 모든 것을 계산하고 처리한다. 텍스트에서 시각적 출력으로 변환하는 과정이 복잡하기 때문에, 중간 단계의 '수치 표현'이 그대로 사용자에게 보여지는 경우가 있다. 그게 바로 "지렁이" 같은 결과물의 정체인 것 같다.
Gemini는 다른 방식을 택한 것으로 전해진다. 구글이 설계한 이 모델은 처음부터 멀티모달(텍스트+이미지 동시 처리) 능력을 핵심으로 만들어졌다. 이미지 생성이 더 직관적으로 최적화되어 있어서, 사용자가 원하는 형태를 시각적으로 더 자연스럽게 표현한다. 이 경험담에서는 "너무 잘 한다"는 게 오히려 고민이었을 정도다.
모델 선택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본다.
우리가 "어떤 AI가 최고인가"를 묻는 건 사실 틀린 질문인 것으로 보인다. 손으로 따라 그릴 밑그림이 목적이라면, 이 경험담 속에서는 Gemini가 실용적이었다. 반면 논문 작성, 코드 분석, 복잡한 문제 풀이 같은 텍스트 기반 작업은 Claude의 강점이 드러날 수 있다. 사진 편집이 필요하면 또 다른 도구가 나을 것으로 보인다.
최소한 아크릴 스크래칭 같은 간단한 창작 활동에서는, 먼저 작업의 목표와 기대하는 결과물의 형태를 정의하고 나서 도구를 고르는 것이 현명해 보인다. 그게 "지렁이"와 "마스터피스" 사이의 차이를 만든다.
📌 원문 발췌
오로지 수치적으로 획을 그려주는 모양입니다. 몇개월전 제미나이에게 호랑이 밑그림좀 달라고 요청해봤을땐 오히려 너무 디테일한거 가져다줘서 심플하게 재요청해 저걸 보고 그렸던 경험이 있었네요.
원본 출처: 클리앙 모두의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