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익스프레스에서 주문한 지 4일 만에 도착한 것으로 전해진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패키징이었다.
보통 알리의 만년필은 몇 가지 방식으로 배송되는데, 하나는 비닐에 둘둘 감겨서 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박스를 옵션으로 따로 선택한 후 1~2달러 추가 비용을 내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상품은 옵션창조차 없이 그냥 박스 상태로 도착한 것으로 전해진다. 감동적인 수준의 패키징이었다.
상품명은 진하오 59. 최근 만년필 마니아들 사이에서 자주 언급되는 모델이었다. 알리 알뜰마트의 구매 체계는 특이한데, 최소 3개 단위로만 구매를 강제한다. 개당 한화로 5800원 정도였으므로, 3개를 구입한 것으로 전해진다. 닙(펜촉) 옵션은 EF와 F 두 가지만 있었다. 개인적으로 필선이 굵은 펜을 선호하는 사용자인데, 선택지가 제한적이었다. 그나마 F를 골라서 주문했지만, 더 다양한 옵션이 있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알리 알뜰마트의 이 같은 강제 묶음 방식은 최소 구매 수량을 보장하는 대신, 소량만 시도해보고 싶은 입문자에겐 작은 진입 장벽이 될 수 있다. 가격은 저렴하지만, 첫 구매자는 3개를 반드시 사야 한다는 조건이 부담스럽다.
이 제품의 정체를 알면 더 흥미롭다. 파이롯트라는 일본 만년필 회사가 1960년대부터 생산해온 '엘리트 95s'를 노골적으로 모방한 제품인 것으로 보인다. 엘리트는 원래 '엘리트'였다가, 창사 95주년을 기념하며 2013년에 복각한 모델이 '엘리트 95s'다. 더 흥미로운 점은 이름까지 따라 만들었다는 것. 95를 거꾸로 뒤집으면 59가 된다. 숫자 놀이를 통해 원작을 우회적으로 참조하면서도 자신만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방식이었다.
나는 이미 엘리트 95s를 소유하고 있었다. 포켓 만년필로서 쓸만한 제품이라고 생각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원작보다 낫다'는 평들이 반복해서 올라왔다. 처음엔 반신반의했지만, 호기심이 이겼다. 사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평가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직접 써보기로 한 것으로 전해진다.
두 제품을 나란히 놓으면 외형은 흡사하지만, 내부 구조에서 차이가 드러난다. 엘리트 95s는 '인레이닙' 방식으로, 펜촉이 몸체와 경계 없이 일체화되어 있다. 이에 비해 진하오 59는 더 작은 크기의 닙이 펜 몸체 안쪽에 삽입되는 구조다. 같은 사실을 기반으로도 설계는 크게 다를 수 있다. 가격대 차이가 20배 이상 나는데도, 이런 설계 차이가 오히려 필감을 개선하는 결과로 이어진 셈인 것으로 보인다.
닙으로 실제 필사를 해봤다. 노트의 줄 간격을 좁혀서 정성스럽게 한 장을 적어 내려갔다. 엘리트 95s(내 것은 EF 닙)는 종이 위에서 일종의 긁힘에 가까운 거친 감촉을 전한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진하오 59는 달랐다. 각지면서도 동시에 부드럽게, 흐르는 듯한 필감이었다. 종이와의 마찰감이 쾌적한 수준으로 조절되어 있었다. 한 번 손에 들었다가 놓고, 또 들었다 놓고를 반복하게 되는, 그런 중독성 있는 필감인 것으로 보인다.
가격 비교는 더 드라마틱하다. 엘리트 95s는 일본 정가가 33000엔인 것으로 보인다. 할인을 받으면 23000엔 수준인데, 이를 한화로 환산하면 약 20만원대다. 한국에서 구매하면 보통 14만원대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원본의 완성도를 느끼려면 전용 잉크 컨버터(CON-40)를 별도로 사야 하는데, 그 가격이 진하오 59 하나와 비슷하다. 결국 총 추가 비용까지 고려하면, 20만원에 고작 1개를 사는 것보다 진하오 59를 20개 사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친구나 가족에게 선물해도 좋고, 나중에 필색을 다양하게 모을 때도 좋다. 같은 액수로 훨씬 많은 경험을 사는 셈인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엘리트 95s를 정말로 고대로 베꼈습니다. 심지어 이름조차도 95를 뒤집어서 59로. 원작보다 낫다는 평이 자자해서 샀는데, 필사해본 결과 진짜로 원작보다 낫다고 느꼈습니다.
원본 출처: 클리앙 모두의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