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여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40대. 특정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한 글쓴이의 사연은, 언뜻 보면 '잘 정렬된 인생'을 보여주고 있었다. 초등학생 딸을 둔 이혼 경험자였지만, 이미 10년이 넘는 시간 속에서 새로운 리듬을 찾은 것처럼 보였다. 지방 신축아파트 자가는 빚을 안고 있었지만 그 무게도 버틸 만한 수준이었고, 월급은 생활이 가능한 정도였다. 평일은 본가에 맡긴 딸의 등하교를 돌보며 혼자만의 시간을 점유한 것으로 전해진다. 주말에 딸을 만나 함께하는 시간은 그의 일상 속 호사였다. 주중과 주말이 반복되는 리듬 속에서 자신을 '충분히 잘살고 있다'고 설득하려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그 설득에 균열이 생겼다. 주변 사람들이 계속 던지는 말 때문이었다. 나이가 더 들면 남자가 필요할 것이라는 경고, 지금은 몰라도 나중에는 후회할 것이라는 단정, 반려자의 유무는 크다는 말들이 반복되었다. 특히 자식이 커서 독립하면 그때는 정말 외로울 것이라는 예언은 미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당사자는 '아직은' 그런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부정했지만, 누군가 지속적으로 그런 이야기를 반복하다 보면 결국 의심의 씨앗이 심어지게 된다.
그렇게 반쯤 흔들린 상태에서 '조건이 맞는' 사람이 등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역시 이혼 경험자, 아들을 키우는 남자였다. 연수입은 비슷했고, 자녀의 성별도 일치했으며, 나이대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재산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어 보였다. 마치 게임의 완벽한 NPC처럼 모든 변수가 정렬되어 있었다. 그 남자는 "40년은 족히 남은 인생을 혼자 살지 말라"고 권유한 것으로 전해진다. 논리적으로만 본다면, 이것은 상당히 '합리적인 선택지'로 여겨질 수 있었다.
그러나 역설이 여기서 발생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건이 완벽해질수록, 당사자 스스로가 무언가를 깨닫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혼자도 충분하다"고 말해온 자신의 외로움이 혹시 부정은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이 든 것으로 보인다. 주변의 거듭된 조언을 '잡음'으로 치부하며 '나는 혼자여도 괜찮다'고 중얼거렸던 것이, 어쩌면 심연 속 불안을 누르고 있던 건 아닐까. 글 마지막에 스스로 내뱉은 한 줄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생각보다 더 외로웠었나."
그 한 줄 안에 이 사연의 모든 의미가 응축되어 있다. 가면을 벗기는 그 순간, 두 선택지가 극명해진다. 자유롭지만 때론 고요한 혼자의 삶. 혹은 누군가와 나누는 경제적 안정감과 동행감. 조건으로 측정할 수 없는 감정의 무게는 다르다. 당사자는 아직 최종 답을 내릴 수 없는 상태로 보인다. 하지만 그 무게를 비로소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무언가의 신호는 아닐까.
📌 원문 발췌
가끔은 헛헛하기도하고 조금 외롭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제겐 힐링이고 호사고 복에 겨운 삶이라 생각합니다. 문득 내 마음이 흔들리는걸보니 생각보다 더 외로웠었나 싶기도 하고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