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에 형을 여럿 두면 자연스레 조카도 많다. 한 글쓴이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나눈 사연인데, 그 글쓴이 경우 형제가 4명이라 조카만 7명인 것으로 보인다. 모두가 조카들의 생일에 입학식에 졸업식에 일일이 다 챙길 수는 없다는 판단은 처음부터 현실적이었다.
그래서 글쓴이는 일찍이 기준을 세워두기로 한 것으로 전해진다. 돌과 입학, 졸업. 이 세 번의 이벤트만 챙기자는 원칙이었다. 조카 7명을 모두 같은 수준으로 챙기는 것은 경제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최근 엄마로부터 예상 밖의 말을 들었다.
올케가 엄마에게 불평했다는 것이었다. 큰댁 조카가 올해 대학에 합격했는데, 글쓴이가 꽤 넉넉한 봉투를 건넸다는 점이 불만의 시작이었다. 그 봉투가 상대적으로 많았다는 건 맞다. 대학 입학이라는 이벤트의 무게가 다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올케의 포인트는 달랐다.
"우리 애는 생일인데 문자 한 통도 없더라"는 식의 주장이었다.
이를 들은 글쓴이의 반응은 의문으로 귀결됐다. 초등학교 나이의 조카 생일과 대학 입학을 정말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었다. 앞서 정해둔 원칙이 있었고, 그 원칙 안에서 글쓴이는 자신의 돈으로 자신의 판단을 따르고 있을 뿐이었다.
"제 돈으로 제 마음대로 챙기는데 그걸 저울질하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나온다. 경조사라는 건 '누구를 더 챙기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이벤트의 무게를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일 수 있다는 관점이 여기에 담겨 있다.
조카 7명을 모두 동등하게 취급할 수 없는 환경에서, 글쓴이는 명확한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 안에서 일관되게 움직여온 것으로 보인다. 대학 입학과 생일을 다르게 본 것도, 그런 일관성의 연장선일 수 있다.
하지만 올케 입장에서는 결과만 보일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큰 조카에게는 준 것(봉투)이 자신의 조카에게는 없었던 것(축하 연락). 그 차이가 자신의 자녀가 덜 중요하다는 의미로 느껴질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문제는 이 감정의 갭을 어떻게 풀 것인가 하는 부분인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는 월요일부터 이 생각으로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다음 달 엄마 생신 때 만날 얼굴이 걱정되는 상황까지 왔다.
명확하지 않은 채로 유지되는 가족 관계의 불편함이 점점 커지고 있는 셈인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가 이미 정해둔 기준이 합리적이라 한들, 그 기준이 상대방에게 충분히 설명되고 이해된 적이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근데 그건 대학 입학이니까 그렇죠 초등학생 생일이랑 같나요? 솔직히 제 돈으로 제 마음대로 챙기는 건데 그걸 저울질하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 싶어요.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