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결정은 이미 내려졌다. 결혼 2년차, 남편도 처음에는 존중한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연애할 때부터 수없이 이 얘기를 했으니까.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느낌이 달라졌다. 그 공감이 말처럼 단단하지 않다는 것.

원가족의 그림자

자신의 어머니는 기분이 나쁘면 밥상을 진짜로 엎어버렸다. 국이 쏟아졌고, 장판도 뒤집혔다. 어린 딸이 그걸 치워야 한 것으로 전해진다. 초등학교 때부터는 현관 열리는 소리만으로도 엄마의 오늘 기분을 읽을 수 있었다. 엄마 감정에 자기 몸과 마음을 맞추며 자란 것으로 보인다.

그 체질은 어른이 돼도 안 빠진다. 설거지를 하지 않은 남편 앞에서 목소리가 높아지다가,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봤을 때 멈췄다. 엄마와 똑같았다. 소름이 끼쳤다. 자신 속에 엄마가 살아 있었다.

상담을 받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자신의 반응 패턴을 들여다보고, 감정 조절을 연습하고, 다른 방식의 대화를 배우려는 노력. 하지만 가족 내 대화는 항상 한 가지로 수렴된다. '손주.' 그 모든 노력은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시어머니 앞에서의 침묵

어제 시댁을 갔을 때였다. 시어머니가 또 아이를 안 낳는 사람들이 편하려고만 생각한다는 말을 꺼냈다. 이제 스물여덟인데 나이도 먹고 있다면서.

"편하자고 안 낳는 거 아니에요."

자신은 그 자리에서 진짜 이유를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엄마처럼 자녀한테 소리를 지르고 감정을 퍼부을까 봐. 자신의 어린 시절을 그대로 물려줄까 봐. 엄마의 목소리와 패턴이 자신 안에 살아 있고, 그것이 언제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공포를 고백한 것으로 전해진다.

남편이 옆에서 모두 들었다. 입을 다물고만 있었다.

집에 와서 왜 아무 말도 안 했냐고 물었다. 남편의 답은 "엄마도 손주를 보고 싶으셔서 그러는 거지"였다. 자신의 말은 중요하지 않았다. 시어머니의 욕망만 정당화되는 구조였다.

더 심각했던 건 남편이 시어머니한테 자신의 가정사를 넘겨버렸다는 것으로 보인다. 친정이 좀 복잡하다고만 설명했다고. 그러자 시어머니는 "그래서 더 낳아서 화목하게 살아야지"라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불행한 과거가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결정을 낳았는데, 역설적으로 그 과거 때문에 더 낳아야 한다는 논리가 돌아온 것처럼 보인다. 상담도, 자기성찰도 고려되지 않은 채.

예쁜 것과 자신감은 다르다

사람들이 말한다. 아이를 낳으면 달라진다고, 예쁘다고. 자신도 그럴 거라 생각한다. 분명히 예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이가 예쁜 것과 그 아이한테 소리 지르지 않을 자신감은 완전 다른 문제다. 사회복지 공부하며 아동학대 사례들을 봤다. 매번 남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아이도 이렇게 될 수 있다는 공포가, 얼마나 진짜인지를 깨달았다.

그 공포는 지금도 생생하다.

선을 긋는다는 것

결국 자신은 남편에게 분명히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음에 또 이 얘기 나오면 시댁을 안 가겠다고.

남편은 "너무 극단적인 것으로 보인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극단적이 뭔지는 자신이 제일 잘 안다. 극단적인 건 밥상을 엎는 거고, 아이의 감정을 무시하고 자기 욕구만 앞세우는 것으로 보인다. 자신은 그냥 가지 않겠다는 것일 뿐인 것으로 보인다.

그 선긋기는 공격이 아니라, 자기를 지키는 최소한의 방법인 것처럼 보인다. 침묵으로 응답하는 남편 옆에서, 자신의 경계를 그어 나가는 것.


📌 원문 발췌

그래서 상담도 다녔고 지금도 다니고 있어요. 그런 노력은 아무도 안 알아주고 손주 얘기만 하네요. 극단적인 건 밥상 엎는 거고 저는 그냥 안 가는 거예요.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