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임산부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사연인 것으로 보인다. 카톡으로 남겨둔 약속이 아니었다면 이 글도 없었을 법하다. 그 기록이 신뢰의 마지막 보루가 되는 상황.
첫째를 낳을 때의 상황부터 정리하자. 시부모님과 친정어머니 양쪽 모두 산후조리원 비용을 내겠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시부모님은 더 명확한 것으로 전해진다. 카톡에 기록을 남겼다. "몇을 낳던 산후조리원비는 우리가 줄게." 누구나 이 말을 믿을 수 있는 형태였다. 약속이 그냥 말이 아니라 텍스트로 남겨졌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첫째 때 이 약속은 지켜졌다. 자연스럽게 둘째 때도 같을 거라고 생각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상황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친정어머니가 넘어졌다. 다리 골절, 손목에도 금이 갔다. 입원한 것으로 전해진다. 손주를 돌보기로 약속한 계획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그 대신 남편이 첫째를 보기로 결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출산휴가를 써서 말인 것으로 보인다. 남편이 시부모님께 이 상황 변화를 알렸을 때,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산후조리원을 취소하라는 것이었다.
이유는 첫째 아이가 엄마와 떨어지면 불안할 거라는 것이었다. 남편과 수시로 화상통화하면 되지 않으냐고 물었지만 답은 같았다. 아버지가 봐주는 것과 어머니가 봐주는 건 전혀 다르다는 식의 말씀. 강한 톤으로 반복되었다.
여기서 멈춰 생각해보자. 처음 계획에선 친정어머니가 첫째를 봐주기로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때 시부모님은 이런 우려를 꺼낸 적이 없었다. 첫째가 엄마를 못 봐서 불안해할까봐 조리원을 가지 말라는 얘기는 없었다. 왜 갑자기?
전화가 이틀마다 울렸다. 조리원 취소했냐는 물음이 계속됐다. 작성자는 한 번쯤은 좋게 넘어가려 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리원에 다녀와서 더 열심히 아이들을 챙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순간 시부모님의 진짜 마음이 터져 나왔다.
"남자들은 애 볼 줄 모르는데 그걸 꼭 맡겨야 하냐고요."
그 한 문장이 지금까지의 모든 설명을 뒤집었다. 아이 분리불안은 명분이었다. 핵심은 따로 있었다. 아들이 육아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는 것. 그러니 아내가 나서서 둘 다 봐야 한다는 뜻이었다.
시부모님은 조리원 취소를 대가로 첫째 때와 동일한 금액의 도우미 비용을 주겠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마치 그 돈으로 문제가 풀릴 것처럼. 하지만 실은 그게 아니었다. 아내가 집에서 모두 감당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작성자가 취한 대응은 꽤 영리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리원비는 필요 없다고 정중히 거절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신 역제안을 던졌다. 혹시 본인들이 부담스러우면 직접 와서 함께 지내달라고. 아들이 육아에 힘들어한다면 손을 거들어달라고.
이 상황을 보면 하나가 분명해진다. 약속이 약속인 이유는 기록에 있다는 것. 그리고 표면적인 이유 뒤에 숨겨진 진짜 의도는, 결국 상대의 말 속 모순을 찾을 때 드러난다는 것.
아들의 편의가 최우선이라면, 손주는 아버지가 봐도 괜찮은데 며느리는 왜 전부 봐야 하는가. 친정어머니가 첫째를 본다고 했을 땐 눈 한 번 깜박하지 않으면서, 남편이 본다고 하면 갑자기 불안이 깊어지는가. 그 질문 앞에서 시부모님의 논리는 잠시 흔들렸을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지금도.
📌 원문 발췌
분명 아이 낳을때 시댁에서 했던 말이 "몇을 낳던 산후조리원비는 우리가 줄게." 였어요! 이건 아직도 카톡에 남아있어요.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