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서 *** 당원으로 수십 년을 지낸 한 유권자의 호소글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왔다.

그는 당원으로서 오랫동안 자신을 위해 세운 원칙이 있었다고 밝혔다. 정치인도, 정당 활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도 아니었지만, 자신이 지지하는 가치를 주변 사람들에게 설득하려면 먼저 "믿을 만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으로 전해진다. 친구들 사이에서 "저 사람이 그렇게 말하면 의견을 들어볼 만하다"는 신뢰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특히 글쓴이가 사는 지역에서는 그의 정당 기반이 약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한 당원의 행동 하나, 말 한마디가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느꼈다. 다른 지역의 당원과 달리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신념을 설득할 때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과정이 쌓이면서, 그의 당원활동 자체가 무형의 책임을 짊어지는 일이 되었다.

흥미로운 지점은 글쓴이의 경제적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그는 "개인의 경제적 이해관계만 따진다면 보수 정당의 정책이 자신에게 더 유리할 것"이라고 인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럼에도 사회 전체가 조금씩이라도 진보하려면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 더 큰 힘을 가져야 한다고 믿었다. 순수한 신념의 선택이었다. 경제 이해를 뒤로한 채 정치적 가치를 우선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다. 글쓴이에 따르면, 자신과 같은 당원들은 "극단주의자"라는 딱지를 붙게 되었다는 것으로 보인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다음이었다. 자신들이 오랫동안 지켜온 신념과 가치, 그리고 그 신념으로 쌓아올린 시간까지도 "적과의 화친"이라는 명목 아래 언제든 포기할 수 있는 것으로 취급되는 듯하다고 느꼈다는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가 주변에 설득할 때 내세웠던 그 원칙이 이제는 협상의 수단이 되고 있다고 호소한 것으로 전해진다. 자신의 신념이 더 이상 지켜야 할 가치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내려놓을 수 있는 협상 카드처럼 다뤄지는 기분이라는 뜻이었다. 이것은 자신의 정체성 기반이 흔들리는 경험이었다.

글쓴이는 기존 정치인에 대해 느꼈던 분노와 현재 상황에서의 분노가 다르다고 표현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상이 다르기도 했지만, 분노의 색깔 자체가 달랐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자가 실망과 비판이라면, 후자는 깊은 환멸이었다. 자신이 지킨 것,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을 그것을 지키려던 곳에서 가볍게 취급한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가 던진 물음—내 신념이 협상의 제물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유권자의 절박함—은 개인의 호소를 넘어선다. 당원으로서 이념에 기반한 신념을 택한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더 보편적인 불안감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저는 정치인도, 그 주변에서 밥벌이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오히려 개인의 경제적 이해관계만 따지자면 보수정당의 정책이 더 유리한 편입니다. 그럼에도 세상이 조금씩이라도 진보하려면 *** 당이 더 큰 힘을 가져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원본 출처: 딴지일보 자유게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