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다 바쁘다는 게 시작이었다. 그래서 만날 때마다 패턴이 생겼다. 밥을 먹고, 가끔 데이트를 하고, 정해진 금액이 계좌로 들어온다. 네 번 만나면 육백 원화. 반복되는 거래처럼 정형화된 관계다. 사실 이건 많은 부모 자식 관계에서 벌어지는 흔한 일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구조가 어떤 이유로 정당화되는지 들여다보면, 뭔가 불편한 지점이 자꾸 튀어나온다.

상대방의 논리는 명확한 것으로 전해진다. "넌 말랐잖아. 밥을 먹어야 해." 건강을 명분으로, 만남 자체를 설계한다. 식사 동행이 조건이 되는 순간, 거래의 틀이 친밀감으로 포장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돌봄이라는 이름 아래 만남이 정해지고, 그 안에서 금전이 오간다. 글쓴이 입장에서는 건강 관리를 받는 대신 경제적 지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구도는 역으로 되어 있다.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만남이 설정되고, 글쓴이가 그에 응하는 구조다. 상대방의 건강 염려가 충분히 진정성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조건이 되면서 만남은 일방적인 제안으로 변한다.

처음엔 밥과 가끔의 외출 정도였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역할은 자꾸 늘어난다. 예를 들어 상대방이 회사 회식을 가야 할 땐 글쓴이가 따라가게 된다. 정확히는 "따라가라"고 불려간다. 그 자리에서의 역할은 처음부터 명확한 것으로 전해진다. 술을 마시지 말고, 운전만 하라. 대리운전인 셈인 것으로 보인다. 처음 약속은 "밥을 먹자"였는데, 그 사이 어딘가에서 "내 행사에 와서 나를 도와줄 사람"으로 역할이 확장되었다. 건강 관리라던 명분은 그 순간 어디론가 사라지고, 필요한 역할만 남는다. 그런데 받는 금액은 같다. 네 번 중 한 번이 회식 대리운전이어도, 계좌에 들어오는 건 정해진 금액인 것으로 보인다. 상대방의 필요가 커질수록 글쓴이의 역할은 늘어나지만, 보상은 고정되어 있는 구조다.

글쓴이는 스스로를 "도비"라고 부른다. 집에 나타나는 도깨비처럼 필요한 일을 하고 돈을 받아가는 존재라는 뜻인 것 같다. 해리 포터 시리즈에 등장하는 하우스 엘프 도비(Dobby)에서 유래한 인터넷 밈으로, 묵묵히 시키는 일을 하는 존재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그 표현 속에는 자조가 묻어 있다. 단순히 웃고 넘어가기엔 뭔가 남는 게 있다는 감정인 것으로 보인다. 돌봄의 이름으로 시작된 만남이, 언제부턴가 일과 보상의 관계로 정형화되었다. 둘 다 바쁘니까 이렇게 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만남의 명분도 명확하고, 금액도 정해져 있으니까. 하지만 그 과정에서 상대방에게 요구되는 게 계속 늘어나면서도, 글쓴이가 받는 것은 고정되어 있다. 상대방의 필요가 한 겹 두 겹 더해질 때마다, 글쓴이의 역할은 자연스럽게 확장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관계가 모두 나쁜 건 아닐 수도 있다. 실제로 경제적 지원을 받으면서도 자리를 함께하고 있는 건 사실이고, 상대방이 이 만남을 원하는 것도 진실일 수 있다. 다만 거기에 조건이 하나 둘 쌓여가면서, 만남의 구도가 미묘하게 변한다는 점이 남는다. 처음엔 '함께'였던 관계가, 언제부턴가 '역할 분담'이 되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글쓴이 스스로 "도비"라는 호칭으로 자조할 때, 그건 단순한 농담만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 원문 발췌

밥먹고 데이트해주면 4번에 600바로 계좌로 쏴줌. 나 말랐다고 무조건 밥을 같이먹어야함.

원본 출처: 인스티즈 익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