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를 봐달라는 언니의 요청이 처음 들어온 건 언제였을까. 한 익명 커뮤니티 글쓴이의 경험을 담은 글을 보면, 그 부탁이 "한두 번 일 있을 때"의 조심스러운 요청이 아니었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언니는 주말 계획을 묻더니 자신들의 볼일이 있다고 말하고는, 유치원생 조카를 자매에게 맡기는 게 당연한 것처럼 요청했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식의 부탁이 누적되면 받는 입장에서는 어떻게 될까. 처음엔 "물론이지"라고 웃으며 받아주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매번 그렇게 요청당하다 보면 무언가가 변한다. 처음엔 부탁이었던 게 어느 순간부터는 마치 의무처럼 들리기 시작한다. 상대방의 말 끝에 물음표보다는 마침표가 느껴지는 지점이 생긴다는 뜻인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가 느낀 게 바로 그 지점인 것 같다. "당연하게 명령하듯" 부탁하는 언니의 태도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받는 사람은 거절 비용이 계속 쌓인다. 조카라는 피를 나눈 관계, 언니라는 상위 서열, 그리고 그걸 도와주면서 얻는 형제애 같은 감정. 그런 것들이 모두 "거절하기 어렵게" 작용한다. 글쓴이도 그 무게를 느껴왔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번엔 다르게 나가기로 한 것 같다.
다음날 지방에 결혼식이 있었다. 글쓴이도 뭔가가 필요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것은 차였다. "차 하루 빌려달라"고 언니에게 부탁한 것으로 전해진다. 육아를 봐달라는 요청과는 다른 종류의 부탁이었다. 물질적 편의를 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부탁"이었다. 그리고 글쓴이는 자신도 보험을 들고 타면 되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최대한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언니의 대답은 빨랐다. 안 된다는 것. 이유는 남편이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글쓴이의 제안이 받아들여질 여지가 없었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같은 "부탁"이라도 방향이 바뀌자, 거절의 벽이 단단히 세워진 셈인 것으로 보인다.
이 순간에 드러나는 관계의 비대칭성이 많은 것을 말해준다. 글쓴이의 역제안은 복수도, 보복도 아니라고 봐야 한다. 오히려 관계의 호혜성을 조용히 시험한 행동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내가 자꾸 해주는 일도 분명 일인데, 넌 나한테 같은 수준의 부탁을 들어줄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었던 것 같다. 그 물음의 답을 글쓴이는 바로 알았다.
대판 싸우고 나서 모든 게 없던 일이 됐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글쓴이는 웃음표를 붙여 표현했지만, 이 결과 속엔 관계 전체에 대한 각성이 담겨 있는 것 같다. 한 번의 충돌로 무엇이 진짜 문제였는지 양쪽이 동시에 느끼게 됐을 테니까.
부탁은 본래 상호성을 전제한다. 누군가 내게 손을 내밀 때, 나도 그에게 손을 내밀 수 있어야 관계가 살아있다. 손을 내밀 수 있다는 것은 거절할 수 있다는 뜻과도 같다. 거절할 수 없는 부탁은 이미 부탁이 아니라 강요에 가깝다. 받는 입장에서 그 차이를 계속 느껴온 사람이라면, 언젠간 "나도 부탁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글쓴이가 던진 물음은 그렇게 조용했던 것 같다. 그리고 답은, 차 열쇠로 돌아왔다.
📌 원문 발췌
한두번 일 있을 때만 조심스럽게 부탁하는 것도 아니고 당연하게 명령하듯 말하길래... 제가 그 다음날 지방에 결혼식이 있어서 차 좀 하루 빌려타겠다고요 안된대요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