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온라인에서 '암살자'라는 화제가 회자되면서 과거 역사 사건들이 다시 조명을 받았다. 한 익명 커뮤니티 글쓴이가 그 과정에서 던진 질문이 묵직하다. 1974년 발생한 특정 역사적 테러 사건의 실행자로 지목된 인물이 사형이 집행될 당시 불과 22세였다는 점이다.

오늘날 22세는 대학 3학년 무렵이다. 하지만 그 시대엔 이미 배우자가 있고 자녀도 두었던 나이였다. 법적·사회적으로 온전한 어른의 책임을 져야 하는 위치였던 셈이다. 더구나 당대 주요 정치 사건을 직접 계획하고 실행한 주체적 행위자였다. 개인의 성숙도가 아니라, 사회가 그 나이에 할당한 역할 자체가 지금과 완전히 달랐던 것이다.

역사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상황은 더욱 극명하다. 4·19 혁명이 한창이던 1960년대, 중학생들도 거리에 나가 시위를 했다고 한다. 국사 교과서에도 기록된 일이다.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청소년·청년들이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회 시스템이었다. 이건 개인의 성숙도 차이가 아니라, 그 시대가 요구한 사회적 역할이 그런 것이었다는 뜻이다.

현재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보인다. 최근 대학생 한 명이 여행을 가야 한다며 학교의 결석 처리를 거부해달라고 티켓을 제출했다는 일화가 회자됐다. 같은 연령대의 청년인데도, 개인의 선택이나 일정이 제도적 규칙(학칙 같은) 틀 안에서만 인정받는 구조다. 단순히 시간이 지난 게 아니다. 어떤 연령대의 사람을 '어른'으로 대우할 것인지, 그리고 어떤 결정과 책임을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존재로 간주할지 하는 사회적 기준 자체가 크게 이동했다.

흥미로운 건 글쓴이 자신의 자기반성이다. "저도 그 나이에 군대를 제대하고 PC방 알바를 했는데, 그때는 나 자신을 충분히 어른이라고 생각했다"는 표현에는 현재의 관점에서 자신의 과거를 다시 평가하려는 긴장감이 묻어난다. 같은 세대 내에서도 자신의 과거 나이를 두고 '정말 어른이었을까?'라고 의심하게 되는 수준이다.

성인의 기준이 단순한 생물학적 연령이 아니라면, 이 문제는 개인 성숙도의 차이라기보다 사회 구조의 변화를 시사한다. 과거 몇십 년 전에는 경제적 궁핍과 전쟁, 정치적 혼란 같은 현실적 압박 속에서 조기에 책임과 선택을 강요받아야 했던 세대들이 있었다. 반면 현대의 제도적 체계는 같은 나이에도 학제나 법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분류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여기서 놓치기 쉬운 건, 두 시대가 '무엇이 옳은가'를 놓고 경쟁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과거가 더 성숙한 세대를 만들었다거나, 현대가 더 건강한 체계를 만들었다는 식의 평가는 각 시대의 조건을 외면하는 것이다. 그저 사회가 필요로 했던 것, 그리고 허용했던 것의 경계가 달랐을 뿐이다.

큰 사회적 결정에서 조기에 책임을 져야 했던 시대. 그리고 같은 나이에도 개인의 선택과 책임의 범위를 더 신중하게 제한하는 시대. 이 둘을 '성숙도의 진화'로 단순히 읽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오히려 각 시대가 청년들에게 할당한 역할과 자율성의 기준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될 수 있다.


📌 원문 발췌

사형집행 당시 나이가 22세.... 배우자와 자식이 있었다고..... 조력자가 있건 없건, 나름 커다란 테러를 기획하고 실행한 사람인데, 요즘 관점에서는 너무 젊지 않나...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원본 출처: 클리앙 모두의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