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을 앞두고 고향에 내려간 글쓴이는 시어머니로부터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신랑의 여동생(32)이 서울에서 남자친구를 사귀고 있다는 것. 회사 일이 바빠 추석에 내려오지 못한 여동생 대신, 시어머니가 그 남자친구에 대해 직접 이야기를 꺼냈다.

그 자리는 단순한 가족 모임이 아니었다. 외할아버지와 외삼촌도 함께 있었다. 바로 그 앞에서 시어머니는 딸의 남자친구에 대해 입을 열었다. 다른 남자들과는 달리 '그걸' 요구하지 않는다는 요지의 발언이었다. "사람이 괜찮나 봐, 순하고..." 시어머니의 말투는 마치 이것이 얼마나 긍정적인 자질인지를 칭찬하는 것 같았다.

글쓴이는 이 장면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자신의 엄마와는 정반대인 태도 때문이었다. 글쓴이 본인도 결혼 전 다양한 경험을 했지만, 엄마에게는 절대 그런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다. 엄마가 걱정할 테니, 딸 가진 부모 입장을 배려해서다. 혹시 의심할 수 있겠지만, 직접 말하지 않는 것으로 서로를 존중하는 어떤 암묵적 약속이 성립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달랐다. 딸의 성적 경험이나 성향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고, 그것을 큰 문제로 삼지 않으며, 심지어 명절 자리처럼 여럿이 모인 공개적인 상황에서도 그 주제를 꺼낼 수 있는 어떤 '오픈 마인드'를 가진 것으로 보였다.

글쓴이는 이 대비에 혼란스러워한 것으로 전해진다. 누가 맞는 걸까. 자녀의 성생활을 인정하고 공개적으로 언급할 수 있는 부모가 더 성숙한 것일까. 아니면 그것을 보호하고 침묵을 지키는 부모의 태도가 맞는 것일까. 자신이 혹시 너무 고지식하지는 않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부모의 성생활 태도 자체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인 것으로 보인다. 성인 자녀의 연애나 성적 경험을 부모가 어느 정도까지 인정하고 받아들일지는 가정마다 기준이 다른 것으로 보인다. 어떤 집은 그것을 자연스럽게 여기고, 어떤 집은 무한정 모른 척 하기를 원한다. 둘 다 옳고 그름을 단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가족 문화와 세대, 그리고 개별 성격이 만드는 차이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는 그 '기준'이 어디에 드러나느냐 하는 점일 수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가정 내 일대일 대화라면 어떤 기준이든 그 가족만의 선택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외할아버지나 외삼촌 같은 윗세대가 함께 있는 명절 자리는 사정이 다르다. 개인의 가족 기준을 넘어 사회적 맥락, 청중의 면면, 공개 자리의 '적절성'이라는 층위가 추가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같은 사건도 자리에 따라 그 무게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고지식함이 아닐 수 있다. 오히려 그것은 관계와 상황을 읽는 성숙함으로 보일 수 있다. 시어머니의 오픈 마인드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그 태도를 드러내는 시간과 장소를 선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아는 것이 진정한 현명함일 수 있다는 생각인 것으로 보인다.


📌 원문 발췌

다른 남자들은 자자고만 하는데 이 남자는 안 그러네. 사람이 괜찮나 봐, 순하고 순수한 남자가 좋아. 저희 어머니는 신랑이 제 첫 남자라고 생각하시는데 절대 아니지만 엄마에겐 절대 말하지 않습니다.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