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추석이 되니 20년 전 기억이 불쑥 떠올랐다. 그것도 며칠의 일시적 추억이 아니라, 계속 맴도는 방식으로. 왜 하필 지금일까. 어쩌면 시간이 지났다는 건 상처를 치유한다는 뜻이 아니라, 단지 상처 위에 흙만 덮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깊이 파고들 만한 계절이 오면 그 흙이 걷혀나가고, 상처는 다시 부풀어 오른다.

부부싸움은 늘 같은 방식으로 끝났다. 말이 오가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주먹으로. 남편은 자신의 감정을 제어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었다. 눈과 코, 목, 등짝까지 새까만 멍이 들어 친정으로 내려가던 날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 날 아버지는 딸의 울음도, 호소도 들었다. 하지만 결국 날 강제로 차에 태워 시집으로 돌려보냈다. 울고 있는 채로. 그 순간 깨달았다. 집은 더 이상 내 피난처가 아니라는 걸.

이혼을 결심한 건 그 후였다. 더 이상 누군가가 나를 구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으니까. 혼자였다. 하지만 이혼은 혼자 할 수 있었다. 법령을 찾고, 돈을 모아 변호사를 선임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문가의 조언을 구하고, 서류를 챙겼다. 그렇게 20대 초반의 나는 홀로 이혼의 절차를 밟아냈다. 폭력으로부터의 탈출은 법과 돈과 결심으로 가능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명절은 법으로 해결할 수 없었다.

처음 맞는 명절이 왔을 때,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며느리지 않은 내가 친정에 나타나는 게 민폐일까 봐, 먼저 손을 내밀었던 것 같다.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세상이 너무 차가웠으니까. 예상과는 다른 답이 돌아왔다. "친척들이 다 온다는데 넌 어딜 와. 챙피하니까 오지 말고 명절이 끝나고 나중에 와서 음식이나 먹어라." 그 말이 떨어진 순간, 나는 또 다른 종류의 폭력을 맞은 것 같았다. 이건 주먹이 아니라 침묵이었다. 외면이었다.

멍은 시간이 지나면 없어진다. 의료 기술이 발전하지 않아도 신체는 자연스레 회복된다. 하지만 그 한마디는 아직도 남아 있다. 며느리도 아니면서 딸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에서, 명절이라는 가족이 모이는 자리에서, 엄마 입으로 나온 "챙피하니까"라는 말. 남편의 주먹이 남긴 상흔보다 이 말이 더 깊게 박혔다. 왜냐하면 폭력은 '나쁜 남편'의 문제였지만, 이 말은 '나를 낳은 사람'이 나를 버린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입는 또 다른 상처, 그것을 2차 피해라고 부르는 걸 나중에 알게 됐다.

지금도 명절이 다가오면 그때가 자꾸 생각난다. 추석이 되면, 명절 시즌의 뉴스를 보면. 명절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하지만 지난 20년 동안 나는 열심히 살았다. 누군가의 아내도, 가족의 일원도 아닌 나로서. 혼자 서기로 다짐했던 그 날부터 지금까지. 그것이 나에게 남겨진 유일한 선택이었고, 또 유일한 길이었다.


📌 원문 발췌

아빠는 제발 가기싫다며 우는 나를 강제로 차에태워 시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이혼 후 처음 명절에 엄마한테 전화했더니 친척들 다오시는데 어딜오냐 챙피하니까 오지말고 명절끝나고와서 음식먹어라 하셨어요.

원본 출처: 네이트판 톡톡